문(門)과 창호(窓戶)는 어떻게 다른가?

‘문’과 ‘창호’의 ‘문(門)’은 바로 집터 밖에서 집터 안의 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大門)’이나, 이 마당에서 저 마당으로 드나들 때 채에 설치한 ‘중문(中門)’이나, 사잇담에 세운 ‘일각대문(一脚大門)’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두짝의 문짝으로 이루어진다.

 

‘창호(窓戶)’는 ‘창(窓)’과 ‘호(戶)’를 합친것으로, ‘호(戶)’는 바로 ‘지게문’이 다. 지게문은 마루에서 방으로 드나드는 곳에 설치한, 두꺼운 종이로 문짝 안팎을 싸 바른 외짝 문을 말한다. 그러나 외짝 지게문만이 아니라 마당에서 방이나 마루로, 또 마루와 방, 방과 방을 드나드는 곳에 설치한 모든 문짝들을 ‘호(戶)’에 포함시킨다. 즉 우리의 창호(窓戶)는 우리집의 채(棟)에 설치한 모든 창(窓)과 외짝 지게문(戶)이나 두짝 이상의 문(門)들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문과 창호를 만든 목수(木手)는 서로 다르다. 즉 소목장(小木匠)은 창호를 짜고, 대목장(大木匠)은 문을 제작한다.

창호의 열고 닫는 방법(開閉法)은 여러 가지이다

그 종류로는 안쪽으로 열고 닫는 ‘안여닫이(內開)’, 밖으로 열고 닫는 ‘밖여닫이-바깥여닫이(外開)’, 홈대를 따라 양쪽으로 열고 닫는 ‘가로닫이(橫開閉)’가 있으며, 이 가로닫이에는 ‘미서기’와 ‘미닫이’가 있다. ‘미서기’는 문 한짝을 옆에 있는 문짝에 붙여 홈대를 따라 열고 닫는 것이고, ‘미닫이’는 한 홈대에 끼운 문짝들을 좌우로 밀어 열고 닫는 문이다. 또 문짝들을 들어 들쇠에 매달아 열고, 들쇠에서 내려 닫는 ‘들어열개’ 등 여러 열고(開) 닫는(閉) 방법이 있다. 이들 방법에 따라 ‘안여닫이창’, ‘안여닫이문’, ‘밖여닫이창’, ‘밖여닫이문’, ‘미서기창’, ‘미서기문’, ‘미닫이창’, ‘미닫이문’, ‘들어열개창’, ‘들어열개문’이라 한다.

창호의 모양새는 집의 표정을 풍부하게 한다

창호의 모양새는 살(대)짜임이 없는 창호와 창문짝에 살(대)짜임을 짜넣는 창호로 나뉜다. 그리고 살대의 살(대)짜임무늬에 따라 서로 다른 모양의 창호가 만들어지고, 이들 다양한 창호들은 집의 얼굴표정을 풍부하게 한다.

 

살(대)짜임이 없는 창호로는 부엌이나 광채에 설치하는 ‘판장문(板長門)’이 있다. 폭이 좁고 긴 두꺼운 판자(널판)를 수직으로 띳장에 붙여 만든 문이다. 다음 ‘골판문(骨板門)’은 두꺼운 널판 대신 얇고 넓은 널판을 두 장 정도 문울거미에 고정시킨 문이다. 이 골판문은 방과 대청의 옆 벽이나 뒷 벽에 설치하거나, 또는 고방(庫房)의 출입문으로 설치한다.

 

한편 부엌 부뚜막 위와 광채의 벽체에는 ‘살창’을 단다. 살창은 살대들을 수직으로 울거미에 꽂아 세워 짜고 창호지를 바르지 않는다. 살대와 살대 사이로 환기와 통풍, 채광을 한다.

 

또 살(대)짜임이 없이 문짝 양면 전체를 두꺼운 종이로 싸 바른 창호를 ‘맹장지(盲障子)’, ‘갑창(甲窓)’,  또는 ‘흑창(黑窓)’이라 하는데 지게문이나 미닫이창이 드나드는 곳에 고정 설치하는 두껍닫이로 쓰이고, 사대부집에서는 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창호, 즉 갑창-흑창으로 쓰인다.

 

창호에 살대를 짜 넣는 살(대)짜임은 여러가지 모양이 있고, 그 살(대)짜임의 이름에 따라 창호의 이름이 정해진다. 살(대)짜임은 ‘띠살’, ‘아자(亞字)살’, ‘완자(卍字)살’, ‘용자(用字)살’, ‘정자(井字)살’, ‘숫대살’, ‘빗살(交, 斜窓)’, ‘만살빗살’, ‘격자빗살(滿斜窓戶, 格子斜窓戶)’, ‘솟을빗살’, ‘귀자(貴字)살’, ‘귀갑(龜甲)살’, ‘꽃살(주로 궁궐, 사찰 등의 창호)’이 있고, 이들이 곧 ‘띠살창’, ‘띠살문’, ‘아자(살)창’, ‘아자(살)문’ 등이 된다.

 

사대부집의 대청마루에서 방으로 드나드는 곳에는 독특한 ‘불발기창호’를 설치한다. 문짝의 중앙에 네모, 팔모, 원형의 울거미를 짜고, 그 울거미 안쪽을 ‘아자살’, ‘정자살’, ‘완자살’ 등의 살(대)짜임을 한 후, 울거미 밖의 문짝 양면 모두를 두꺼운 종이로 싸 바른다. 이들 불발기창호는 보통 네짝에서 많게는 여섯짝을 설치하는데, 두짝씩을 접어, 들쇠에 매달아 방과 대청의 두 공간을 하나의 큰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또한 사대부 집에서는 창호의 제일 밖에 두짝 바깥여닫이 ‘덧창(대부분 띠살창호)’, 그 안으로 모기나 파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통풍이 되는 두짝 미닫이 ‘사창(紗窓)’, 그 안쪽으로 두짝 미닫이 쌍창(용자살, 아자살, 완자살 등), 그 다음 마지막으로 두짝 미닫이 ‘갑창(흑창)’을 설치한다. 그리고 제일 바깥여닫이 덧창 위에 ‘문렴자(門簾子)’를 치고, 때로는 방 안의 갑창 위에 치기도 한다. 문렴자는 속에 솜을 넣고 양면을 피륙으로 마감한 지금의 커튼과 같은 것으로, 낮에는 노비(奴婢)가 말아서 발고리에 매달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풀어서 덧창을 덮어 한기(寒氣)를 막고 또한 빛을 차단하여 개방성(開放性)과 폐쇄성(閉鎖性)이 공존(共存)케 한다.

우리 창호의 이런 저런 성격

창호는 집채의 방과 방사이, 방의 앞뒤 옆 벽면, 주간(柱間)마다 설치되고, 이들 각 창호들의 서로 다른 살짜임으로 집 채(棟)는 풍부한 모양의 입면(立面)을 이루게 된다.

 

특히 사대부집에서는 안채, 사랑채, 별당, 정자, 행랑채(棟) 등의 여러 채(棟)들과 이들 각 채(棟)의 방과 마루 등 수많은 간(間)들 모두에 창호가 설치됨으로, 공간마다 서로 다른 모양을 이루게 하면서도 각 공간들은 독립적인 공간이 되게 한다. 또한 방과 방 사이, 방과 마루사이의 창호들은 이들 각 공간들이 서로 이어지는 공간의 연속성(連屬性)을 가지게 하며, 나아가 커다란 하나의 공간으로 확장케 한다.

 

창호의 살짜임 무늬는 다양한 모양의 창호를 이루게 하는 것은 물론, 주제의 반복과 변화에서 오는 율동성(律動性)을 가지게 한다. 한공간의 창호 살짜임 무늬는 다른 공간 창호의 살짜임 무늬로 반복되거나, 다른 살짜임 무늬로 변화되어 공간마다 다양한 모양으로 율동한다. 또한 같은 살짜임 무늬는 창호뿐만 아니라 외부공간의 담장, 굴뚝 등의 장식무늬로 다시 나타남으로써 주제의 반복에 의한 공간정서의 통일성을 갖게 한다.

 

우리의 집은 기단을 형성하고 기단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워 도리와 보로 결구하고, 지붕틀 위에 기와를 덮어 지붕을 이루는 목조가구식구조(木造架構式構造)로, 집채가 대지(大地) 즉 자연(自然)과 분리된듯하나, ‘들어열개’라는 독특한 창호의 개폐법(開閉法)으로 곧 자연과 하나가 된다. 대청, 별당, 정자 등의 분합문들을 접어 들쇠에 매달면 그 순간부터 대지와 분리되었던 공간의 폐쇄성(閉鎖性)은 곧 개방성(開放性)을 이루어 자연과 하나가 된다.

 

우리의 집은 옛날부터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온돌과, 무더운 여름을 지나기 위한 마루의 두가지 바닥구조를 이루어 왔다. 온돌은 공간의 폐쇄성을 요구하였고 마루는 공간의 개방성을 요구하여, 항상 폐쇄적 공간과 개방적 공간이 한집채에 공존(共存)케 하였다.

 

우리 창호는 창호지를 창의 겉에 바르는 중국(일부)이나 일본의 호지법(糊紙法)과는 달리 창호지(窓戶紙)를 창호의 안쪽에 바른다. 따라서 우리집은 외적(外的)으로는 선적구성(線的構成)을 하고 내적(內的)으로는 면적구성(面的構成)을 한다. 기단과 밑인방, 도리, 처마, 용마루의 선들과, 기둥, 지붕골의 선들은 모두 창호 살대의 선들과 함께 선적구성을 하고, 방안의 창호지, 벽지, 장판지, 천장지 등은 모두 면적구성을 하게 한다.

 

우리 창호는 우리집의 내부공간에 독특한 공간정서(空間情緖)를 이룬다. 창살과 창살 사이로 은은히 비치는 햇빛, 때로는 소쇄(瀟灑)한 기분이나 때로는 아기자기한 정을 불러 일으키고, 달 밝은 밤이면 처마의 뜰에 심은 벽오동, 석류, 파초 잎들의 그림자를 받아들여 한 폭의 묵화(墨畵)를 이룬다. 그리고 낮이나 달 밝은 밤, 창호지에 던지는 처마의 그림자나, 살대 그림자의 두께를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알게되고, 곧이어 정갈한 사차원 공간에 내가 있음(自在)을 깨닫게 한다.

 

우리 창호의 창호지는 빛과 함께 자연의 소리를 투과한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소리(落水-音), 한 여름날 행랑 바깥마당 느티나무에서 구성지게 울어대는 매미소리, 가을날 뒤뜰 감나무의 까치소리,깊은 밤 툇마루 아래의 귀뚜라미 소리, 나뭇잎새 소리 등등 유정(有情), 무정(無情)의 자연의 모든 소리가 창호지를 투과함으로써 인공 공간인 방은 곧 자연과 융합한다. 우리의 창호는 집 자체에 설치될 뿐만아니라, 외부공간의 담장에도 설치된다. 창호는 이 마당과 저 마당을 서로 서로 융합하게 하고, 나아가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한다.

 

서울 안국동 윤보선 전(前) 대통령가의 안채와 별당(안사랑)채 사잇담에 설치한 긴 교창(交窓)은 안마당과 별당(안사랑)마당을 서로 융합시키며, 경주 독락당(獨樂堂) 냇가 담장의 살창은 독락당과 담장 밖, 터 아래로 흐르는 계류(溪流)의 모습을 독락당 내부공간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부차(俯借)로, 곧 담장 안의 뜰만이 독락당 뜰이 아니라 담장 밖 자연 공간 모두가 독락당뜰이 되게 한다. 즉 우리의 집을 자연과 하나 되게한다. 자연으로부터 할애(割愛) 받은 자연 공간은 여러개의 인공 공간인 채(棟)와 간(間)으로 분화하고, 이들 채와 간으로 분화하였던 공간들은 다시 하나의 통합된 공간, 곧 집이 되어 자연과 융합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 창호가 있기에 그러한 것이다.

 

글. 주남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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