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여대왕(真聖女大王) 거타지(居陁知)
제51대 진성여왕(真聖女王)은 임금이 된 지 몇 해 만에, 유모(乳母) 부호부인(鳧好夫人)과 그의 남편 위홍(魏弘) 잡간(匝干) 등 서너 명의 총신(寵臣)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하여 정사를 어지럽히니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근심하여 다라니(陀羅尼) 은어(隠語)를 지어 길 위에 던져두었다. 왕과 권신들이 이를 얻어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왕거인(王居仁)이 아니고는 누가 이 글을 지었겠는가”라며 곧 거인(居仁)을 옥(獄)에 가두었다. 거인(居仁)이 시(詩)를 지어 하늘에 호소하니 하늘이 이에 그 옥(獄)에 벼락을 쳐서 그를 놓아주었다.
시(詩)는 이렇다.
연단(燕丹)의 슬픈 울음에 무지개가 하늘을 뚫고
추연(鄒衍)이 품은 슬픔 여름에 서리 내렸네
지금 나의 불우함이 그들과 같은데
황천(皇天)은 어찌하여 아무 징조가 없는 것인가
(燕丹泣血虹穿日.鄒衍含悲夏落霜.今我失途還似舊.皇天何事不垂祥)
다라니(陁羅尼)는 이렇다.
“나무망국 찰니나제 판니판니 소판니 우우삼아간 부이사바하
(南無亡國 刹尼那帝 判尼判尼 蘇判尼 于于三阿干 鳧伊娑婆訶).”
풀이하는 이가 말하기를
“찰니나제(刹尼那帝)는 여왕(女王)을 말하고 판니판니 소판니(判尼判尼 蘇判尼)는 두 소판(蘇判)을 말한 것이니, 소판(蘇判)은 관작(官爵)의 이름이요, 우우삼아간(于于三阿干)은 서너 명의 총신(寵臣)을 말한 것이며, 부이(鳧伊)는 부호(鳧好)를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왕의 시대에 아찬(阿飧) 양패(良貝)는 왕의 막내 아들이었다. 당(唐)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에 백제(百濟)의 해적(海賊)이 진도(津島)에서 길을 막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수(弓士) 50명을 뽑아서 그를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鵠島)에 이르니 우리말로 골대섬(骨大島)이라고 한다. 풍랑이 크게 일어났으므로 열흘 남짓 묵게 되었다. 공(公)이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 점을 치니, 말하기를 “섬에 신령한 못(神池)이 있으니 그곳에 제사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못 위에 제전을 갖추었더니, 못물이 한 길 남짓이나 솟아올랐다.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 공(公)에게 말하기를, “활 잘쏘는 사람 한 사람을 이 섬 안에 머무르게 하면 순풍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공(公)은 꿈에서 깨어나 좌우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구를 머무르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라고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무 조각(木簡) 50쪽에 우리 이름들을 써서 물에 띄워 가라앉는 것으로 제비(鬮)를 뽑읍시다”라고 하니 공(公)이 이를 따랐다. 군사 중에 거타지(居陀知)란 자가 있어 그의 이름이 물 속에 가라앉았으므로 이에 그를 머물게 하니 순풍(順風)이 갑자기 일어나 배는 지체 없이 나아갔다. 거타(居陁)가 수심에 쌓여 섬에 서 있었더니 갑자기 한 노인이 못으로부터 나와서 말하기를, “나는 서쪽 바다의 신(西海若)이오. 매번 한 중(沙弥)이 해가 뜰 때에 하늘로부터 내려와 다라니(陁羅尼)를 외우면서 이 못을 세 바퀴 돌면 우리 부부(夫婦)와 자손(子孫)들이 모두 물 위에 떠오르는데 중(沙弥)은 내 자손의 간과 창자(肝腸)를 취하여 다 먹어버리고 오직 우리 부부(夫婦)와 딸 아이 하나가 남았을 뿐이오. 내일 아침에 또 반드시 올 것이니 청컨대 그대가 중을 쏘아주시오”라고 하였다. 거타(居陁)가 말하기를, “활 쏘는 일은 나의 장기(長技)이니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고 하였다. 노인(老人)이 그에게 고맙다고 하고는 사라지고 거타(居陁)는 숨어서 기다렸다. 다음날 동쪽(扶桑)에서 해가 뜨자 중(沙弥)이 과연 와서 전과 같이 주문을 외우며 늙은 용의 간(老龍肝)을 취하려고 하였다. 이때 거타(居陁)가 활을 쏘아 중(沙弥)을 맞추니 곧 늙은 여우(老狐)로 변하여 땅에 떨어져 죽었다.
이때 노인(老人)이 나타나 감사히 여기며 말하기를, “공의 은덕을 받아 우리가 목숨(性命)을 보전하였으니 내 딸을 공에게 아내로 드리겠소”라고 하였다. 거타(居陁)가 말하였다. “따님을 주시고 저버리지 않으시니 진실로 원하던 바입니다.” 노인(老人)은 그 딸을 한 꽃가지로 바꾸어 품 속에 넣어주고 이내 두 용(二龍)을 시켜 거타(居陁)를 받들고 사신(使臣)의 배를 쫓아가서 그 배를 호위하게 하여 당(唐)나라의 영역에 들어갔다. 당(唐)나라 사람들이 신라(新羅)의 배를 두 용(二龍)이 지고 오는 것을 보고서 이 사실을 황제(皇帝)에게 아뢰니, 황제가 말하기를 “신라(新羅)의 사신(使臣)은 반드시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라고 하였다. 잔치를 베풀어 여러 신하들의 위에 자리하게 하고 금과 비단을 후하게 내려주었다. 고국에 돌아와서 거타(居陁)가 꽃가지를 꺼내니, 꽃이 여자로 변하였으므로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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