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식(Nasik) 석굴
800여년 간 도시와 상인들 안녕과 번창 지켰던 ‘사원군(寺院群)’
홀이 길고 부정방형으로 중요한 비하라굴 중 하나인 제20굴 내부 모습.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서인도 바라나시로 불리는
고다바리 위쪽 장대한 언덕
높이 150미터 언덕 중간 위치
가장 유명 제18굴 비롯
나식 최고의 19굴 등
B.C.1~A.D.1세기, 7세기
석굴 24개 혼재 장관
나식은 고다바리 위쪽에 있는 도시로 장대한 언덕이 있고 서인도 바나라스라고 불린다. 나식 석굴의 위치는 암산이라고는 하지만 높이 약 150m의 언덕이다. 언덕 중간 90m 지점에 총 24개의 석굴이 있다. B.C.1~A.D.1 세기경의 오래된 굴과 7세기경의 비교적 연대가 내려오는 석굴이 혼재한다.
이곳은 당시 상인 길을 따라 돌로 된 산을 이용해서 세운 사원군(寺院群)의 하나로서 유명하다. 굴은 법당과 승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기 석굴에서는 석가의 ‘불족석(佛足石)’이 예배의 대상이 되었으나, 후기 석굴에서는 불상으로 바뀌었다. 이들 암굴 중 18개의 굴은 탑원굴(塔院窟)이며 제 3·8·15호 굴 정면에는 화려한 디자인의 열주(列柱)가 있어 아름답다.
시기적으로 나식에서 가장 오래된 굴원은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제14 굴인 승원에는 칸하(Kanha)왕 치세하에 당시 나식에 살던 관리가 이 굴을 만들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나식 지방은 그 후 샤카족의 크샤하라타 왕가가 점령한다. 기원전 1세기 말 부터 2세기 무렵으로 크샤하라타 가문의 크샤트라파였던 우샤바다타는 나식에 석굴, 토지, 금전을 보시한 사실이 제8 굴에 2개의 비문에 의해 밝혀져 있는 것이다.
나식 석굴은 총 24 굴로 구성되어 있는데 18 굴만 차이티야굴이고 나머지는 비하라굴이다.
유일한 차이티야굴인 제18 굴은 비교적 소형으로 높은 기단을 가진 스투파를 모시고 있으며 기원 전후에 개굴 되었다. 이 굴의 가장 큰 특징은 정면에 벽을 파고 아치형 입구를 만들고 그 위 부분에 같은 형태의 아치형 창문을 만든 것이다. 신장상이 좌우에 배치된 입구의 문 위는 뾰족한 보주형 아치지만 하단부가 둥글게 되어있고 그 바깥이 튀어나온 형태이다. 이 석굴은 안쪽에 열주가 서 있으며 항아리 모양의 기둥 받침이 있다. 입구 좌우에 있는 수문신 향좌상(向左像)만 남아 있다.
서인도 바라나시로 불리는 나식에는 2000여년 전에서 1300여년 전에 건립된 석굴 24기가 혼재되어 있다. 18굴만 빼고 모두 비하라굴이다.
제3굴 스투파.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은 높은 기단 위에 난간을 두르고 반구형의 탑신을 조성하였으며, 상륜부는 산개(傘蓋, 우산모양)를 가지고 있다. 굴의 입구 좌우에 수문신을 배치한 차이티야굴은 보기 드물다. 우측상은 없어져 현재 좌측상만 남아있다.
B.C.1세기의 제19 굴은 나식 최고의 굴로 넓은 방 삼면에 두 개 씩의 방이 있다. 2세기 전반의 제3 굴은 기단 전면에 괴이한 인물 흉상을 조각하고 기둥의 머리에는 여러 가지 동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후면 벽 중앙의 스투파에 있는 부조는 비하라(승원)의 불전화로 방향을 바꾼 것이라 생각된다. 부조의 스투파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 제 2·5·8·9·17·20 굴 등도 2 세기에 개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3굴은 대형 비하라굴로 넓은 중앙 공간의 3면 벽에 총 19개의 승방이 마련되어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이른바 전기 비하라굴의 전형적인데 특징적인 것은 후벽 중앙에 새겨진 스투파 부조이다. 굴 앞에는 눈에 띄는 장식물이 많지만, 안쪽에는 장식이 없다. 각 방의 바닥은 홀보다 더 높이 올라 있다. 각각의 방에는 뒤쪽에 약 60cm 정도 높이로 침대가 없는 전통 양식을 따르고 있다. 아름답게 많이 장식된 기둥이 있고 대(臺)가 없는 굽타기 비하라와 다른 점이다.
이 스투파가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며 후대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부조된 벽의 위치와 좌우 승방의 위치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는 곧 예배 대상으로써 표현된 것으로 이것이 부조라는 것과 비하라굴 내에 새겨졌다는 것이 상당히 보기 드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제10번 석굴보다 정성들여 만든 노력이 느껴지는 세세한 조각들이 있는 비하라 양식의 석굴이다.
제23굴 초전법륜인.
바닥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불교사원에 적합하지 못한 주제들이 있다. 한 쌍의 상들이 서 있는데 새가 있는 나무에 기댄 여성과 상대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요염한 한 쌍,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여성을 위로 쳐들고 있는 남성이다. 쿠샨기의 풍속화인 셈이다.
제10번 석굴(나하파라굴)은 배열과 규모에 있어서 제3 굴과 매우 흡사하다. 2개의 굴 모두 기둥과 홀의 뒷벽 위에 있는 탑이 매우 비슷하다.
원 양식의 이 석굴의 각 면에는 넓은 홀의 3면에 돌 침대를 겸비한 16개의 방을 갖추고 있고 입구는 기둥이 있는 베란다로 구성되어 있다. 8각의 베란다 기둥들은 사자·코끼리·황소 등의 각 기둥 받침과 단지 모양의 주춧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당시의 표본이 될 만큼 뛰어난 것이다. 입구의 좌측에는 나가(Naga, 뱀의 왕)가 수호신으로 조성되어 있다. 검소한 20명의 비구들에게 가사를 공양 올리고, 병든 스님에게 약을 제공하는 등의 끊임없는 기부를 하였다.
제20 굴은 제3 굴과 제10 굴처럼 나식의 중요한 비하라굴 중 하나이다. 설계와 구조는 제10굴과 유사하다. 그러나 홀은 길고 부정방형이다. 후대에 추가된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전면에 있는 4개의 기둥은 제3굴의 것과 비슷하지만 더 후대의 것이다. 문간 근처에 있는 벽의 아랫부분은 부서졌다. 홀에는 기둥이 없다. 구조를 살펴보면 방의 크기와 위치는 규칙적이지 않고 감실의 양쪽에 보살입상이 협시하는 설법하시는 부처님의 상이 있다.
승원 양식의 이 석굴은 처음에는 수행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후에 사따와하나왕조의 7대 왕인 사따까르미왕 시대에 마하세나빠띠의 부인에 의해 완성되었다. 후대에 작은 방들과 사리함이 만들어지고 6~7 세기에는 승원이 확장되었다. 빠드마빠니와 와즈라빠니에 의해 간직되었던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었다고 전한다.
나식의 제 23 번 굴은 불규칙하게 배열된 5개의 작은 방으로 이 굴은 빤둘레나 석굴들 중에서 가장 많은 불상, 보살상, 천신상, 여신상 등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의 반열반에 관한 부조도 있다. 제23굴은 전기 비하라굴의 말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곳에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3~4 세기까지 석굴을 조성하였다는 비문으로 보아 그 이후의 6~7세기까지 석굴 조성작업이 이어졌다.
이곳에 있는 부처님 수인은 초전법륜을 하고 있으며 바위 대좌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으며 앙련의 연화대좌를 하고 있는데 세련미는 다소 떨어지나 마치 초기 이불병좌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37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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