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世家) 권제7(卷第七) 고려사7(高麗史七)

 

문종1(文宗一) 즉위년

 

문종 장성인효대왕(文宗 章聖仁孝大王)의 휘는 휘(徽)이고, 자는 촉유(燭幽), 옛 휘는 서(緖)이다. 현종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원혜태후(元惠太后) 김씨(金氏)이며, 현종 10년(1019) 기미 12월 계미에 태어났다. 〈현종〉 13년(1022) 낙랑군(樂浪君)에 책봉되고, 정종(靖宗) 3년(1037) 내사령(內史令)에 임명되었다. 〈정종〉 12년(1046) 5월 정유 정종이 훙서하니, 그 영구 앞에서 즉위하고 백관(百官)이 옥새를 받들고 중광전(重光展)에 나아가 하례하였다.

5월 기해. 제서를 내리기를,
“돌아가신 왕께서 쓰시던 의상(倚床)과 답두(踏斗)는 모두 금은으로 장식한 못을 사용하였고 또 금실, 은실로 짠 계금(罽錦)으로 이부자리를 만들었으니, 유사(有司)에 명하여 이것을 구리와 철, 능직과 견직으로 바꾸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경자. 왕이 백관(百官)을 이끌고 빈전(殯殿)에 나아가 슬피 울었다.

6월 갑인. 상서공부낭중(尙書工部郞中) 최원준(崔爰俊)을 거란(契丹)에 파견하여 국상을 알렸다.

기미. 왕이 궁궐[大內]에서 본명성(本命星)에 초제(醮祭)를 지냈는데, 〈왕이 기미년에 태어났으므로〉 이 날이 되면 반드시 친히 초제를 지냈다.

정묘. 왕이 신봉루(神鳳樓)에 나아가 대사면령을 내리고, 모든 관직자에게 한 등급씩 올려주었다.

가을 7월 기묘. 초하루에 모후의 휘신도량(諱晨道場)을 위해 왕륜사(王輪寺)에 행차하였다.

신사. 제서를 내리기를,
“팔음도(八音島) 수군 은질(殷質)과 양도(壤島) 수군 광협(匡協)·관달(寬達)·영길(英吉) 등이 적을 사로잡은 공이 있으니 모두 중윤(中尹)을 제수하라”
라고 하였다.

무술. 제서를 내리기를,
“지난번 동번(東蕃)의 적이 정변진(靜邊鎭)을 포위하였을 때 별장(別將) 정광순(鄭匡順)이 힘써 싸워 적을 물리치고 전쟁 중에 죽었다. 그 공이 매우 크니 금오위낭장(金吾衛郞將)을 추증하라.”
라고 하였다.

8월 임자. 건덕전(乾德展)에서 화엄경도량(華嚴經道場)을 열었다.

경신. 왕이 건덕전(乾德展)에 나아가 조회를 보고, 선정전(宣政展)에 나아가 시중(侍中) 최제안(崔齊顔)·평장사(平章事) 최충(崔沖) 등을 불러 당면 정사의 옳고 그름을 논의하였다.

9월 기묘. 왕이 보제사(普濟寺)에 가서 반승(飯僧)하였다.

계미. 치사(致仕)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최보성(崔輔成), 우복야(右僕射) 조옹(趙顒), 상장군(上將軍) 이응보(異膺甫)·김홍광(金洪光) 등이 연로하므로 술과 음식, 의복을 하사하였다.

을유. 내전(內殿)에서 3일간 백좌인왕경도량(百座仁王經道場)을 열었다.

정유. 임진현(臨津縣) 사람 배행(裵行)이 왕명이라 꾸며 조경(趙京) 등 7인에게 관직을 제수하니, 법으로는 마땅히 교형에 처해야 하나 마침내 죄를 사면하여 귀향하게 하였다.

기해. 왕이 구정(毬庭)에서 나이 80세 이상의 관원과 백성 중 남녀의 효자·순손(順孫)·의부(義夫)·절부(節婦)·환과고독(鰥寡孤獨)·폐질자(廢疾者)를 위해 직접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병오. 왕이 묘통사(妙通寺)에 행차하여 분향하였다.

겨울 10월 계축. 유사(有司)에서 아뢰기를, “궁전·성문(城門)·사원·관명(官名)·부호(府號) 중에서 왕의 이름과 음이 같은 것을 모두 고쳐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병진. 왕이 회경전(會慶展)에서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었다.

11월 무자. 시중(侍中) 최제안(崔濟顔)이 죽었다.

경인. 왕이 팔관회를 열고 법왕사(法王寺)에 행차하였다.

12월 병오. 초하루 백관이 건덕전(乾德展)에 나아가 성평절(成平節)을 축하하자, 왕이 재추(宰樞) 및 급사중승(給事中丞) 이상의 측근 신하를 위해 선정전(宣政殿)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성평절은 왕의 생일이다. 매번 왕의 생일에는 나라에서 기상영복도량(祈祥迎福道場)을 외제석원(外帝釋院)에서 7일간 열고, 문무백관은 흥국사(興國寺)에 가며, 동경(東京)·서경(西京)의 양경(兩京)과 4도호(都護)·8목(牧)은 각각 소재한 곳의 사찰에 가서 행사하는 것을 법도로 삼았다.

임술. 거란(契丹)이 기거사인(起居舍人) 주종백(周宗白)을 파견하여 부의(賻儀)를 전해왔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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