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지리산 선객 배출
부용영관(芙蓉靈觀)
高踞覺地 先引三車
張羅八海 撈摝群魚
金搥擊碎 虎穴魔宮
人亡世寂 月落天空
높은 깨달음의 자리에 걸터앉아 먼저 세 수레를 이끌어
팔해에 그물을 펼치고 많은 고기를 끌어 올리더니
금방망이로 호랑이 굴과 마군의 궁전을 쳐 깨트리니
사람 없는 세상은 고요하고 달이 진 하늘은 비었다.
청허스님의 <삼로행적(三老行蹟)>에 실린 부용영관(芙蓉靈觀, 1485~1571)스님의 진찬(眞讚)이다. 청허스님은 1577년 금강산에서 부용스님의 행장을 정리하면서 스님이 입적한 후 연곡사 서편에 승탑을 세우고 지었던 영찬을 행장에 남겼다. 청허스님의 찬문이 적힌 부용스님의 진영은 현재 전하지 않지만 다행히 선운사에 조선 후기에 제작된 진영이 있어 두 스님간의 인연과 그 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청허스님은 출가 전인 15세에 진사시에 응시했다 낙제하고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숭인(崇仁)스님의 소개로 벽송사의 부용스님을 만나게 됐다. 이후 벗들은 모두 상경했으나 홀로 남아 행자생활을 하였고 6년이 되던 해 스스로 머리를 깎고 경성스님을 수계사(受戒師), 부용스님을 전법사(傳法師), 숭인스님을 양육사(養育師)로 모시고 득도식을 올렸다. 숭인스님을 비롯해 경성스님과 부용스님은 모두 벽송스님의 제자로 이들을 통해 청허스님은 벽계정심에서 벽송지엄, 그리고 부용영관으로 이어지는 조선중기의 불교계의 정맥을 계승했다.
부용스님은 13세에 출가해 신총(信聰)스님에게 교학을 배우고 위봉(威鳳)스님에게 선(禪)의 요체를 참구하였으며 덕유산과 금강산에서 각각 9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묵언수행했다. 이처럼 20년에 걸친 정진에도 풀리지 않던 의문은 지리산 벽송사의 벽송스님을 참배하고 비로소 해결되었고 이를 계기로 벽송스님을 참스승으로 모셨다.
16세기 전반 벽송스님에 이어 부용스님이 지리산에 주석하면서 선풍(禪風)이 크게진작되었고 배우는 이들이 넘쳐났다. 이 시기 청허스님은 비록 행자의 몸이었으나경전 탐구와 참선에 매진하였고 부용스님은 청허스님의 수행에 막힘이 있으면 시의적절한 가르침을 펼쳐 불도(佛道)로 인도했다. 청허스님의 찬문에는 자신이 입문할 당시 부용스님이 보인 드높은 법력(法力)이 담겨 있으며 또한 스승을 잃은 상심어린 제자의 마음이 녹아 있다. 세월이 흘러 선운사의 후손들은 이런 마음을 가늠한 듯 청허스님 진영만이 아니라 부용스님 진영도 함께 모셔 하늘에 달이 언제나 존재하기를 기원했다.
해제=정안스님 설명=문화부 문화재팀장 이용윤 [불교신문32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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