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웠던 불교 밝힌 등불
벽송지엄(碧松智儼)
震旦之皮 天竺之骨
華月夷風 如動生髮
昏衢一燭 法海孤舟
鳴乎 不泯萬嵗千秋
진단의 피부이며 천축의 골수이자
중국의 달과 동이의 바람이다. 살아 있는 듯 머리털이 자라고
어둠을 비추는 등불로 법의 바다에 외로운 배로
아아~ 천년만세에 남아있게 하시었네.
법손(法孫)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이 벽송지엄(碧松智儼, 1464~1534)스님에게 올린 영찬이다. 조선전기에 활동한 벽송스님은 부용영관(芙蓉靈觀, 1485~1571)과 경성일선(敬聖一禪, 1488~1568)을 배출해 불교의 전통이 서산휴정, 부휴선수에게 이어지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벽계정심(碧溪正心)에게 “서래밀지(西來密旨,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를 전수받음으로써, 고려 말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3)로부터 환암혼수(幻菴混修, 1320~1392)와 구곡각운(龜谷覺雲) 이후 면면히 이어지던 선맥을 다시 일으켰다. 이처럼 불교가 어려움을 겪던 시절에 달마의 선풍과 임제종의 법통을 일으켜 후대에 전수한 벽송스님에 대해 존경의 마음은 청허스님의 찬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청허스님은 생전 벽송스님만이 아니라 스승인 부용스님과 경성스님의 행적을 정리하고 진찬(眞讚)을 지어 <삼로행적(三老行老)>을 간행했다. 이후 청허스님의 제자 종봉(鐘峰)스님은 <청허당집>에 그대로 수록해 청허의 후손이면 누구나 세 스님의 공덕을 영원히 새기도록 했다. 이러한 청허스님과 후손의 마음가짐은 벽송사의 벽송스님 진영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의자에 앉아 있는 벽송스님을 그린 이 진영은 오래전부터 사찰에 모신 진영이 낡자 19세기 전반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새 비단 위에 섬세한 필치로 위용을 드러내는 벽송스님의 형상과 반듯한 서체로 또렷해지는 청허스님의 찬문을 보면서 후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담아 “천순갑신(1464년) 3월15일 부안 송씨로 출생하여 가정갑오(1534년) 11월1일에 단좌 입적했다(天順甲申三月十五日出生 扶安宋氏 嘉靖甲午十一月一日辰時端坐入寂)”는 짤막한 벽송스님의 행적을 화면에 추기해 대대로 이어지는 벽송스님을 향하는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해제=정안스님 설명=문화부 문화재팀장 이용윤 [불교신문32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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