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계자(勿稽子)
물계자(勿稽子)는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 대의 사람이다.
가문은 대대로 미미하였으나 사람됨이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어려서부터 장대한 뜻을 품었다.
당시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함께 아라국(阿羅國)을 치기로 하자 아라(阿羅)의 사신이 와서 구원을 청하였다. 이사금(尼師今)이 왕손(王孫) 날음(捺音)으로 하여금 이웃의 군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해주게 하니 드디어 여덟 나라(八國)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이 싸움에서 물계자(勿稽子)는 큰 공을 세웠으나 왕손(王孫)에게 미움을 샀으므로 그 공을 기록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물계자(勿稽子)에게 “자네의 공이 가장 컸는데 기록되지 못하였으니 원망하는가?”라고 하였더니 “어찌 원망함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찌 이를 왕에게 아뢰지 않는가?”라고 하니 물계자(勿稽子)는 “공을 자랑하고 이름을 구하는 것은 뜻있는 선비가 하지 않는 바이다. 단지 마땅히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굳혀 후일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3년이 지나 골포(骨浦), 칠포(柒浦), 고사포(古史浦)의 세 나라 사람들이 갈화성(竭火城)을 공격하였다.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하고, 세 나라의 군사를 대패시켰다. 물계자(勿稽子)는 수십 명의 목을 베었으나 그 공을 논함에 이르러서는 또 얻은 바가 없었다.
이에 자기 부인에게 말하였다. “일찍이 들으니 신하된 도리는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어려움을 만나면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전날의 포상(浦上), 갈화(竭火)의 싸움은 위험하고도 어려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목숨을 바치고 자신을 돌보지 않았음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게 되었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저자와 조정에 나가겠는가?” 드디어 머리를 풀고(被髮) 거문고(琴)를 들고 사체산(師彘山)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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