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각(聖覺)

 

성각(聖覺)은 청주(菁州) 사람이었다. 그의 씨족(氏族)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세상의 명예와 벼슬을 즐기지 않아서 거사(居士)를 자칭하며 일리현(一利縣) 법정사(法定寺)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후에 집에 돌아가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늙고 병들어서 거친 음식을 먹기 어려우므로 넓적다리 살(股肉)을 베어 내어 드시도록 하였다. 돌아가시자 정성을 다하여 불공을 드려 극락왕생을 도왔다.

대신(大臣) 각간(角干) 경신(敬信)과 이찬(伊湌) 주원(周元) 등이 이를 아뢰니 국왕(國王)웅천주(熊川州)향덕(向德)의 옛 일을 참고하여 이웃 현의 조 3백 섬을 상으로 주었다.

논(論)하여 말한다. 송기(宋祁)의 《당서(唐書)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훌륭하도다. 한유(韓愈)의 논(論)이여. ‘부모가 아프면 약이 되는 음식을 익혀 이것으로써 효도하는 것이지, 아직 몸을 훼손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만약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성현(聖賢)이 여러 사람들보다 먼저 그것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다가 불행히 그로 인하여 죽게 되면 상하게 하고 끊는 죄가 돌아감이 있을 것이다. 어찌 그 집 문에 깃발(旌)을 세워 그를 특별히 나타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비록 그러하지만 좁고 누추한 고을에서 학술과 예의의 자질을 갖추지 않았으면서도 자신을 희생하여 그 부모를 봉양할 수 있었음은 정성어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또한 칭찬할 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열전으로 쓴다”하였다. 그런즉 향덕(向德)과 같은 자도 또한 기록해둘 만한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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