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릉(章陵)

장릉(章陵)

추존왕 원종(元宗)

- 위치 : 경기 김포시 김포읍 풍무리

- 지정번호 : 사적 제202호

- 조성시기 : 1627년(인조 5)

- 능의구성

      장릉(章陵)은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된 원종(元宗)과 그의 비인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의 능이다. 쌍릉으로 조영되었다.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 없이 호석(護石 : 봉분 주위를 둘러 막는 돌)만을 두르고 있는데, 이는 왕이 아니었던 왕의 아버지, 즉 대원군의 묘제를 따른 것이다.

문석인은 머리에 복두를 착용하고 공복을 입은 채 석마와 나란히 서 있으며, 무석인은 장군의 형상으로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다. 문무석인 모두 무표정한 얼굴에 위엄이 서려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길인 참도가 다른 능과는 달리 약간의 경사진 계단식 형태이다. 정자각이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정자각 동측에 자리한 비각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으로, 비문을 통해 능의 주인공과 그의 생전 행적을 알 수 있다. 홍살문 안의 비면에는 ‘조선국 원종대왕 장릉 인헌왕후 부좌(朝鮮國元宗大王章陵 仁獻王后左)’라고 쓰여 있으며, 1753년(영조 29)에 세워졌다.

근처에는 장릉의 원찰인 금정사(金井寺)가 자리하고 있다.

 

-능의역사

     원종은 1619년(광해군 11) 12월 29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이듬해 2월에 양주군 곡촌리에 장사지냈는데, 그로부터 3년 뒤 큰 아들 능양군(인조)이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아들이 왕위에 오름에 따라 대원군에 봉해졌으며, 묘가 원으로 추숭되어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다.
1626년(인조 4) 1월 14일에는 경희궁 회상전에서 원종의 부인이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같은 해 5월 18일 김포 성산의 언덕에 안장하고, 원호를 육경원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흥경원을 이곳 성산으로 천장하여 쌍릉을 조영하면서 원호를 흥경원이라 합칭하게 되었다. 1632년 이귀(李貴) 등의 주청에 따라 다시 원종으로 추존하여 능호를 장릉이라 하고 석물을 왕릉제로 개수하였다.

 

- 원종(元宗) 생애이야기

      원종은 1580년(선조 13) 6월 22일 경복궁 별전에서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 11세에 가례를 올렸다. 어릴 때부터 용모가 남다르고 태도가 신중하였으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남달랐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피난길에 올라 험난한 시기를 겪고 1595년(선조 28) 겨울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608년에는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로부터 7년 후 원종의 셋째 아들 능창군을 황해도 수안군수 신경희가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무고로 인하여 커다란 옥사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능창군은 강화도로 유배당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원종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 후 원종은 몸져누워 1619년(광해군 11) 12월 29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일화

      원종은 임진왜란 때 부왕 선조를 모시면서 험난한 일을 겪었으나, 나이가 아직 어렸음에도 의연한 태도로 이에 대처하여 모두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중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전란의 한가운데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신하들에게 명하여 정원군(원종)을 영변으로 데려가 왜적을 피하도록 하였다. 그 때 정원군이 영변에 이르러 울면서 말하기를, “이곳에 온 것은 내가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임금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왜적의 형세가 날로 성하고 임금의 행차는 날로 멀어지니,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다면 임금과 신하가 죽음과 삶을 같이 하지 못할 것인데, 이 몸이 간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선조는 이를 전해듣고 가상히 여겨 정원군을 다시 불러왔으며, 그 뒤로 정원군은 선조 곁을 떠나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를 옆에서 모셨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종결되고 서울에 돌아오자, 1604년(선조 37)에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 생애이야기

      인헌왕후는 능안부원군 구사맹의 딸로 1578년(선조 11) 4월 17일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 정원군(훗날 원종)과 가례를 올리고 연주군부인에 봉해졌다. 첫째 아들인 능양군이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1623년(인조 1)에 연주부부인으로 진봉되었다.
그러나 셋째 아들 능창군이 역모에 휘말려 유배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에 충격을 받은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는 등 불행한 일이 잇달아 일어나자, 1626년(인조 4) 1월 14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훗날 이조판서 이귀의 주청으로 부군인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됨에 따라 인헌왕후로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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