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광해군묘(光海君墓)

광해군묘(光海君墓)

15대 광해군(光海君)

- 위치 :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산65번지

- 지정번호 : 사적 제363호

- 조성시기 : 1641년(인조 19)

- 능의구성

      광해군묘는 조선 15대 임금이자 두 번째 폐위 임금인 광해군(光海君)과 그의 부인 문성군부인(文成郡夫人) 유씨(柳氏)의 묘이다. 쌍분인데, 오른쪽이 문성군부인 유씨의 묘이다. 연산군묘와 동일하게 군묘(君墓)의 형식으로 간소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두 봉분에 각각 비석과 상석이 있고. 장명등 그리고 망주석과 문석인 1쌍이 설치되어 있다.

 

- 능의역사

      제주도로 유배지가 옮겨진 광해군은 그곳에서 67세의 천수를 다하고 1641년(인조 19)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때문에 1643년(인조 21) 제주도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위치한 지금의 묘소로 옮겨졌으며 건너다보이는 곳에 어머니의 묘소인 성묘가 자리한다.

 

- 광해군(光海君) 생애이야기

      광해군은 1575년(선조 8)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곧 세자로 책봉되었다. 1608년 즉위한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국토와 문화재 복구사업에 전념했다. 창덕궁 등 궁궐을 중수하고,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특히 당시의 국제정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북방외교정책은 광해군 최고의 치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광해군은 형이었던 임해군과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유배 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등의 실정으로 반정의 싹을 키웠다. 특히 영창대군을 방안에 가둔 채 불을 때어 질식사시킨 일은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1623년 능양군(인조)을 포함한 반정군은 광해군을 폐위하여 강화로 유배시키고, 인목대비의 윤허를 받아 왕위에 올라 반정을 성공시켰다. 제주도로 유배지가 옮겨진 광해군은 그곳에서 67세의 천수를 다하고 1641년(인조 19) 세상을 떠났다.

 

- 문성군부인(文成郡夫人) 유씨(柳氏) 생애이야기

문성군부인유씨(文成郡夫人柳氏)는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유자신(柳自新)의 여(女)로 선조(宣祖) 31년(1598)에 태어났다. 광해군(光海君)이 즉위(卽位)하자 왕비(王妃)로 책봉(冊封)되고 광해군과 같이 폐위(廢位)되어 강화(江華)로 함께 유배(流配) 당하였으며 유씨(柳氏)는 이곳에서 인조원년(仁祖元年, 1623년) 10월 8일 사망하였다. 동년(同年) 10월 30일 양주군(楊州郡) 적성동에 장사(葬死)했다가 광해군사후(光海君死後) 같은 묘역(墓域)에 천장(遷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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