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문수사(五山文殊寺) 석탑기(石塔記)


뜰가의 석탑(石塔)은 대개 신라인(新羅人)이 세운 것 같다. 제작은 비록 순박(淳朴)하여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영험이 있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 일을 여러 옛 노인(古老)들에게서 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옛날 연곡현(連谷縣) 사람이 배를 갖추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홀연히 탑 하나가 배를 따라오는 것을 보았는데, 모든 물속의 동물들이 그 그림자를 보고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이 때문에 어부(漁人)는 고기를 한 마리도 얻지 못하여 분함을 참지 못하고 그림자를 찾아가보니 이 탑이었다. 이에 도끼를 휘둘러 그 탑을 쳐부수고 갔는데, 지금 이 탑의 네 귀퉁이가 모두 떨어진 것은 이 까닭이다.
나는 놀라고 감탄해마지 않았으나 그 탑의 위치가 조금 동쪽에 있고 중앙에 있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겨 이에 현판 하나를 쳐다보니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비구(比丘) 처현(處玄)이 일찍이 이 절에 있으면서 문득 뜰 한가운데로 옮겼더니 20여 년 동안 잠잠하여 아무런 영험이 없었다. 일관(日者)이 터를 구하러 이곳에 와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 뜰 가운데는 탑을 안치할 곳이 아닌데 어째서 동쪽으로 옮기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스님들이 깨닫고 다시 옛 자리로 옮겼으니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하였다. 나는 괴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나 그러나 부처(佛)의 위신(威神)력을 보건대 그 자취를 나타내어 만물을 이롭게 함이 이와 같이 빠르니 불자(佛子)된 사람으로서 어찌 잠자코 말하지 아니하겠는가?
때는 정풍(正豊) 원년 병자(丙子, 1156) 10월 일에 백운자(白雲子)는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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