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천 이야기길(1)
옛사람들 삶의 자취·문화향기 고스란히
산책로 주변 유적물들·전설서린 옛지명 산재
길 걷다보면 민초들의 숨결 느껴지는 듯
숲과 문화 어우러져 현대인 정서적 갈증 해소
▲ 도린재 계곡.
옛날 도로사정이 변변치 않았을 때, 자동차 길인 신작로가 정비되기 이전에는 읍내 시장과 재 너머에 있던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은 산마루의 고갯길로 이어져있었다. 땔나무를 하고, 소를 먹이러 가고, 산골짜기의 다랭이 논을 오가던 길도 모두가 이 산길로 이어져 크고 작은 도로망이 모두 산위에 펼쳐져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민초들이 살아온 삶의 숨결이 배어있는 이 길에는 그들에게 이정표가 되었던 실개천, 골짜기, 고갯길, 바위 이름과 전설이 서린 여러 지명들이 아직도 남아 옛 사람들의 자취를 전해주고 있다.
지금 조성하려는 ‘-이야기길’은 아마도 옛길과는 목적과 기능이 다른 길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 길에는 숲이 있고, 원시에 대한 향수와 숲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면서 건강을 위해 걷는 산책로이거나 산림욕을 즐기려는 주민들의 현대적 욕구가 반영된 길일 것이다. 여기에다 산책로 주변에 산재해 있는 옛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자취와 숨결을 곁들인다면 역사와 문화향기가 서린 이야기길이 되어 더욱 어울리지 않을까?
▲ 무적골
‘옥류천 이야기길’은 본래 마골산과 동축사를 품고, 옥류천 상류의 계곡을 끼고 돌아드는 재라는 뜻의 ‘도린재(자기)’에다 문화적 요소를 가미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옥류천 상류의 계곡을 따라 난 경사도가 완만한 혼합림의 숲길은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 색다른 모습의 숲길과 다양한 동ㆍ식물의 서식과 생육상태를 관찰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하고, 이 길로 들어서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또 숲이 내뿜는 방향성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와 테르펜(terpene) 등은 신체의 기능 활성화, 쾌적감, 마음의 안정과 함께 머리가 시원해지고, 맑아짐이 느껴지는 길이다.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이 숲길을 산책하면서 자연을 체험하고, 사색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는 길이다.
특히 산책로 주변에는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알바위터’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가족이나 부족 공동체의 염원을 담아 하늘에 기도하던 장소로 성혈유적지라고 하는데, 이 길을 따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고, 청자를 굽던 가마터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이곳 주민들은 ‘사기쟁이집골’이라 불러오면서 지명 속에서나마 옛날 옛적에 사기그릇을 굽던 장인의 이야기를 어름푸시나마 전해 준다. 최근 이곳에는 청자의 파편과 그릇을 구울 때 받침이 역할을 하던 ‘도지미’ 등이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길가를 따라 여러 골짜기의 이름들 ‘송구방골ㆍ반티밑골ㆍ쇠평골ㆍ바람골ㆍ범무골ㆍ가재골ㆍ한골짝ㆍ칭계돌’ 등도 옛사람들의 문화가 투영된 지명들이다.
또 길가에 있는 장군바위(메뚜깔돌)는 장수발자국터와 함께 ‘아들, 딸 낳기를 바라던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장군 바위 꼭대기에 돌을 던져 올리던 모습들…’ 전설 속에 담아 고이 전해져 온다.
▲ 관음정
신라 진흥왕 때(573)의 동축사(東竺寺) 창건설화는 『삼국유사』에 전해져 오는데, 현존하는 신라 사찰로는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이다. 동축사 뒤편 바위언덕을 ‘동대(東臺)ㆍ택미암(擇米岩)ㆍ섬암(蟾岩)ㆍ관일대(觀日臺)’ 등으로 부르는데, 약 300년 전에 이곳에서 울산목장의 감목관을 지냈던 유하 홍세태는 이곳에서 많은 시(詩)를 남겼고, 목관 원유영은 힘찬 필치로 ‘부상효채(扶桑曉彩)’라는 문구를 통해 ‘해돋이의 찬연한 기상’을 동대의 석벽에다 새겨놓았다.
▲ 관일대
이와 같이 찾아보면, 많은 이야기꺼리가 숨겨져 있는데, 무엇을 더 보태랴? 옛 사람들이 남겨놓은 자취와 숨결을 느끼게 하는 옛길, 이미 숲과 문화가 어우러진 산책길은 현대인들의 정서적 갈증을 해소시켜줄만한 충분한 환경을 가진 셈이다. 이러한 까닭에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많은 주민들이 이 산책길을 오르내리고 있지 않는가?
▲ 장적암
이제 행정이 거들어야 할일은 주민들이 이 길을 이용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고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과 이 숲길에 얽힌 역사ㆍ문화이야기를 주민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주민들의 참여와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일일 것이다.
‘산곡의 지명과 전설의 채록’
이야기가 있는 산책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갯길의 여러 지명과 전설 등의 채록이 필요하다. 우선 지역 선배들의 선행연구서와 각종 읍지, 호적장적, 조선지지자료 등과 같은 참고할 문헌자료 등이 있지만, 누군가 현지를 안내해주지 않으면 그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옛날에는 고갯길을 따라 시장을 다니고, 농경이며 땔나무를 하고, 소를 먹일 때는 자연스럽게 부르던 지명들이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환경이 변하여 산 바깥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일로 산길을 드나드는 일은 자연히 줄어졌다. 또 숲이 우거지고, 옛 모습들이 변해 있고,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오던 지명과 전설도 지금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산곡(山谷)의 지명은 묘지주인에게 묻는다.’
산골의 지명은 묘 비석이나 상석의 묘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최근에 세운 것은 묘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산곡의 지명은 묘갈에서 채록한 예가 다수 있다. 산길을 지나다가 묘역에 석물(石物)이 있으면 우선 들어가서 묘지 주인에게 묻는다. 예의를 갖추어 인사말을 하고 묘갈을 확인하게 되는데, 대체로 묘갈의 내용은 고인의 신분에 관한 칭호, 휘(諱)ㆍ자(字)ㆍ호(號) 등과 관향, 생몰연대, 묘 자리의 위치, 좌향, 자손에 관한 내용들인데, 묘갈에서 그곳의 지명을 알게 될 때에 반가웁기 그지없다.
서부동의 비석골과 무적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의 지명을 탐문하던 중에 어느 날, 그 곳에 어릴 때부터 살았다는 한 토박이 노인은 ‘업다민덕골’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업담밑에’라 일러주었다. 뒷날 이 골짜기의 뒷산 중턱에 있는 ‘영양 천씨 묘’의 상석(床石)에서 “업담미곡산(業談尾谷山)”이라는 묘갈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업담밑에’란 바로 ‘업담밑골’임을 알게 되었지만, 도대체 ‘업담’이란 무슨 뜻일까? 그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늘 화두처럼 안고 있었다.
▲ 묘갈-업담미곡산.
어느 날 고향이 울릉도인 모씨와 환담 중에 자기 고향에는 ‘업담밑’이라는 말을 지금도 흔히 쓰는 말이란다. 농가의 토담집 측면의 지붕아래, 농기구와 곡식가마니를 쌓아두는 곳을 ‘업담밑’이라 부른다고 한다.
경상도 방언으로 토담집의 정면 섬돌이 있는 곳을 ‘죽담ㆍ죽담밑’이라 하고, 좌우측면의 공간을 ‘업담밑’이라 하여, 옛 사람들은 이곳에 낙숫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서까래 끝을 조금 길게 뻗어 나오게 하여 멍석ㆍ농기구 등을 보관하던 곳으로, 지역에 따라 ‘웃담밑’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곳의 지형지세가 토담집의 ‘업담밑’을 닮아서 붙여진 것일까? 그렇다면 오랜 옛날 남목(동구)에는 ‘업담밑’이란 말을 사용했기에 지명 속에 화석화된 채로 전해지고 있지 않을까? 이 이야기를 전해준 모씨의 고향 ‘울릉도’ 방언의 억양도 방어진 말과 꼭 같이 닮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약 300년 전, 울산목장의 감목관을 지냈던 유하 홍세태가 남긴 시 ‘어풍대’의 한 구절에는 이곳 사람들이 (부세, 노역 등에 시달려서인지) 울릉도로 가버린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고 가슴아파하는 목민관의 심경을 읽을 수 있는데, 당시 울릉도로 건너간 방어진(동구) 사람들과 그 자손들은 당시에 이곳에서 사용되던 언어들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울릉도의 ‘업담밑’이란 말과 이곳의 지명 ‘업담밑골’은 뭔가 끈끈한 인연 줄이 얽혀있음을 아련히 전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어풍대
‘어풍대(馭風臺)’ - 유하 홍세태 시, 장세후 역.
此臺之外地無東(차대지외지무동) 이 대 밖으로는 더 이상 동쪽에는 땅 없고,
縱得乘槎亦莫窮(종득승차역막궁) 뗏목 얻어 탄다 해도 또한 끝이 없으리.
但見日生暘谷裏(단견일생양곡리) 보이느니 다만 양곡에서 떠오르는 해뿐,
或聞人到鬱陵中(혹문인도울릉중) 어쩌다 사람 울릉도까지 이르렀다는 소리 듣네.
石欹半揷千重浪(석의반삽천중랑) 바위 기우뚱하니 반은 천 겹의 불결에 꽂히고,
松短偏當萬里風(송단편당만리풍) 소나무는 키 작아 다만 만리의 바람 당하네.
笑爾列仙行有待(소이렬선행유대) 그대들 신선 다님을 기다리고 있다 웃나니,
坐來吾已接鴻濛(좌래오이접홍몽) 앉아서 내 이미 홍몽 접한다네.
출처; 울산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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