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칠곡중앙로 마애불상군
대구 칠곡 명봉산 자락에 33개 불상군 ‘조성’
부조 본존불과 반가삼존상 ‘눈길’
2011년 위덕대박물관 조사에서
7세기 전반 작품으로 추정했으나
대구시 조사서 근대작품으로 판정
‘안양마을’ 등 오랜 지명 전해와
유물 조사와 고증 필요해 보여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중앙로 ‘안양마을’이라 불리는 곳에 높이 7m, 폭 20m 가량의 거대한 바위에
병풍처럼 새겨져 있는 마애불상군.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중앙로 129길 169-3(읍내동). 대구 칠곡 향교 인근의 야트막한 야산인 명봉산(401.7m) 자락 ‘안양마을’이라 불리는 곳에는 높이 7m, 폭 20m 가량의 거대한 바위에 병풍처럼 의미심장한 불상군이 새겨져 있다. <칠곡읍지>에 의하면 이 마애불상군 주변에는 과거에 ‘안양제(安養堤)’라는 저수지가 있었다고 전한다.
2011년 10월 이 마애불상군을 현장조사한 위덕대학교박물관은 “지금까지 국내 최대 마애암각군은 29개의 불상이 새겨진 경주 남산 탑곡의 마애조상군(보물)이었으나 대구 읍내동의 마애암각군에는 불상 32구와 선각 9층탑 등 총 33개의 상(像)이 새겨진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이 불상군에 대해 “7세기 전반 작품으로 단일 바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조각되어 다양한 크기와 모습이 삼국시대 불상박물관과 같은 국내 유일의 유적으로 불교조각사, 복식사도상학, 불교사상사 및 마애불의 전파경로 연구에 획기적인 유적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본존마애불상 좌측의 협시보살상과 스님과 재가불자상.
하지만 2017년 대구광역시에서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받은 보고서에는 ‘삼국시대 조성된 불상군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의견서는 “일부 신라 양식의 특성이 발견되지만 표면이 고르지 않은 바위 면에 불상군을 조성한 점, 주변에 예배를 위한 건축물 흔적이 없는 점 등 일반적인 삼국시대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중반 대구지역 유물유적에 대한 전수조사 때도 “삼국시대 불상으로 보이긴 해도 뾰족한 코 등은 우리의 전통불상과는 그 양식이 다르고, 주변에 사찰의 흔적이 없는 등으로 미뤄 근대기 불상조성의 수련장 정도로 본다”고 추측하며 특별한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했다.
지역 언론과 중앙일간지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으나 대구광역시의 발표로 마애불상군의 문화재적 가치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지만 이 불상군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에 있다. 전문가들은 마애불상군 중 중앙에 위치한 마애불상의 수인이 거꾸로 된 점(보통의 불상은 오른손은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을 하고, 왼손은 일체중생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원인을 하고 있으나 이 마애불은 거꾸로 되어 있다)을 꼽으며 근대의 모작으로 보기도 했으나 일부 학자들은 신라시대 금동불에서는 거꾸로 된 수인이 다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기도 한다.
칠곡중앙로 마애불상군은 불교계에 여전히 관심 대상이다. 가장 중심에 위치한 본존마애불은 높이 1.8m로 ‘W’자를 뒤집어 놓은 상태의 가운데 모서리에 높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조각수법은 고려시대에 조성한 마애불로 알려진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보물)과 비슷하다. 손 모습은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다. 마애불상으로서는 상태가 좋은 편이다. 특히 얼굴부분은 보존상태가 좋다. 본존불상 좌측에는 보관을 쓴 협시보살과 스님 2명(오른쪽), 공양중인 재가불자 2명(왼쪽) 등 6명의 형상을 거느리고 있다. 또한 좌우의 바깥면에는 크고 작은 25구의 선각 불보살상이 어우러져 장엄한 불세계(佛世界)를 구현하고 있다.
특히 본존불 우측 상단에서 밝게 웃고 있는 반가삼존상은 바위에 새겨진 것으로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의 향우협시,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국보),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보물) 등 4건과 비슷하며 반가상이 3존으로 조각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 불상군들에 대해 2011년 언론보도 당시 전영권 교수(대구카톨릭대학 지리학과)는 “중생대 백악기(약 1억년 전)때 형성된 경상누층군 중 낙동층군의 일부인 진주층(동명층)에 속하는 단단한 갈색 사암 암벽이라서 가는 선으로 조각된 불상들이 오랜 세월에 견딜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문화재적 가치가 있음에 힘을 싣기도 했다.
본존불 우측 상단에 있는 반가삼존상 탁본.
현장취재 차 택시를 탔는데 이 마을 토박이라고 밝힌 운전기사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는 “제가 이 마을 토박이인데 예로부터 마을 이름이 ‘안양마을’이었고, 5대조 이상의 선대 때부터 불상군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실제 마애불상군 입구에는 안양지라는 연못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마을지명의 유구성이라든지 좁은 식견으로 본 마애불의 상태는 근대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안양사라는 사찰이 있어 마애불을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부족해 보인다. 이 곳에 대한 보존과 유물조사 및 고증이 좀 더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3738호]
'세상사는 이야기 > 바위에 스며든 부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1) | 2022.12.05 |
---|---|
안성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1) | 2022.11.14 |
영주 문수로 마애석불좌상 (0) | 2022.10.09 |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 (0) | 2022.09.22 |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0) | 2022.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