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

방아간 천장

연자매

제주 말방아 국가민속문화유산32호

소 재 지; 제주 제주전역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연자마(硏子磨) 2틀이다. 연자마(硏子磨)는 농기구의 하나로서,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직경 120㎝ 안팎의 둥근 돌로 웃돌을 세우고 이를 말이나 소가 끌어 돌림으로써 곡식을 찧는 연장이다. 「연자방아」라고도 하며 제주도에서는 주로 말이 끌기 때문에 「말방에」「말가레」라 하는데 가레는 맷돌의 사투리이다. 따라서 연자매가 설치된 방앗간은 제주 사투리로「말방이집」「말방에집」「말가레왕」등으로 부른다. 연자마(硏子磨)는 제주도에서는 필수적인 농기구로, 개인이 소유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공동으로 제작하고 계를 조직하여 관리 운용하였다. 연자마계의 성립은 생산수단의 단순한 구조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민의 집단구조와 사회·경제사 및 생활사를 살펴보게 하는 다변성을 지닌 역사적 기구이다. 계는 시설의 유지와 수리를 맡을 뿐 아니라 계원 사이의 경조사를 돕는 역할도 하게 된다. 제주의 연자마(硏子磨)는 육지에서 행하는 연자마(硏子磨)의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곡식을 다루는 몇가지 일을 모두 해낸다. 즉 곡식의 이삭을 연자마에 올려놓고 곡식 알을 떨어내는 일, 곡식 알의 껍질을 벗겨 속살만 남도록 찧는 일, 그것을 다시 빻아 가루로 만드는 일 등이다. 연자매는 현대식 도정기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주요 농기구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자연 소멸되어 쓰이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원시적이고 소박한 시설이다. 
※명칭변경; 연자매 → 제주 애월 말방아 → 제주 말방아

 

제주 잣동네 말방아 국가민속문화유산32-1호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애월면 하가리 920-1

'말방아’란 말을 이용하여 도정하는 연자방아의 제주도 말이다. '제주 애월 말방아'가 있는, 애월읍 하가리는 제주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이 마을의 말방아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50년대까지 말방아가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주도의 특징적인 연자방아인 말방아는 마을 가운데 길가 여기저기에 위치한다.‘말방애집’, ‘방애왕’, ‘ 가레집’등으로 불리던 연자방아간(연자마옥, 硏子磨屋)은 제주도 특유의 가옥형태에 따라 만들어졌다. 지붕은 띠(모초, 茅草)로 이은 후 바둑판처럼 줄로 얽어매었고, 벽체는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돌담을 쌓아서 만들었다. 그러나 말방아의 구조는 육지의 연자방아와 다르지 않다. 원판형으로 다듬은 큰 바탕 돌(저석, 底石) 하나를 바닥에 눕히고, 그 중앙에는 나무로 된 축을 세우고 여기에 다시 원판형으로 다듬은 큰 윗돌(상석, 上石)을 수직으로 세웠다. 그리고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윗돌이 바탕 돌 위에서 회전할 수 있도록 축과 윗돌을 나무틀로 결합하였다. 이 나무틀에 말이나 소를 연결하여 윗돌을 회전시켜 곡식을 도정 하였다. 도정은 바탕 돌 위에 곡식을 올리고 윗돌을 회전시킬 때 원판형의 돌이 서로 마찰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도정된 곡식이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바탕 돌의 주변으로는 외곽을 좀더 높고 넓게 처리하여 일종의 임시 저장 영역을 원형으로 만들었다. 제주 애월 말방아는 제주도 여타 지역의 말방아와 마찬가지로 말을 이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주도에서는 연자방아를 흔히 '말방에'라고 하는데, 이는 말을 이용하는 방아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소를 부려서 방아를 찧기도 하고, 두 사람이 함께 연자방아를 돌려서 찧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이런 명칭으로 보아 제주도에서 연자방아는 기본적으로 말을 이용한 방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말방아에는 이를 운영하는 계가 결성되었고, 이 계를 중심으로 하여 연자방아를 신축∙관리∙운영하였다. 이 계는 부모나 조부모, 처부모 등의 3년상, 묘소 이장, 묘소 담쌓기, 가옥 신축 등에도 상부상조하는 기능을 겸한다. 육지의 방아는 디딜방아가 중심이라고 한다면, 제주도의 방아는 말방아(연자방아)가 중심이라는 점, 그리고 말방아를 통해서도 제주도 농경문화의 특성, 마을사회의 운영방식을 일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제주 애월 말방아는 대표적인 제주도 말방아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이 마을의 말방아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대략 150년에서 2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만 전해온다. 원래 잣동네에는 말방아가 없었다고 한다. 하가리사무소가 있는 곳 앞쪽의 ‘넷골’에만 말방아가 있었는데, 인구가 늘어나자 잣동네에 새로 말방아를 만들었다. 당시에 ‘알돌(바탕돌, 底石)’은 ‘고내리’와 ‘자운당’사이의 ‘도채비 수덕’이라고 하는 곳에서 채취하였고, ‘웃돌(윗돌,  上石)’은 신엄리 지경의 ‘신구’라는 곳에서 채취하였다.

※명칭변경; 잣동리 말방아 → 제주 잣동네 말방아

 

제주 당거리동네 말방아 국가민속문화유산32-2호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애월면 신엄리 1009-1

'제주 당거리동네 말방아'가 있는, 애월읍 신엄리는 하가리에 이웃한 해안 마을이다. 해안에 있으면서도 어업이 성하지 않은 농촌이다. 당거리동네는 신엄리의 중심에서 좀 외진 곳에 있으며, 약 18호로 구성되어 있었다. 신엄리에는 많은 수의 말방아가 있었다. 당거리동네 말방아의 경우 계(契)의 좌목(座目)이 있었기에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겨져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 좌목에는 계의 운영상황을 살필 수 있는 구성원 내역, 말방아의 수리와 유지 보수에 관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당거리동네 말방아의 경우,‘ 웃돌’은 당거리에서 500m 정도 떨어진‘도들왓’이란 곳에서 마련하여, 장정 여섯 사람이 옮겨 왔다고 한다. 다른 마을의 석수장이를 불러서 말방아를 만드는 예도 있으나, 이 말방아는 주민들이 조직한 계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오방(午方)에 말방아가 있었으나, 그 방위는 우마에 피해가 있다는 속신에 따라서 옮겼다. 육지의 방아는 디딜방아가 중심이라고 한다면, 제주도의 방아는 말방아(연자방아)가 중심이라는 점, 그리고 말방아를 통해서도 제주도 농경문화의 특성, 마을사회의 운영방식을 일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제주 애월 말방아는 대표적인 제주도 말방아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명칭변경; 당거리동네 말방아 → 제주 당거리동네 말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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