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323호

소 재 지; 충남 논산시 관촉로 1번길 25(관촉동 254) 관촉사

논산 관촉사(灌燭寺)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은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도 잘 알려진 이 석불입상은 높이가 18.12m에 달해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고려 말 승려 무외(無畏)가 쓴 글인 「용화회소(龍華會䟽)」와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등에 이 석불입상의 기록이 남아 있는데,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명으로 승려 조각장 혜명(慧明)이 제작하였으며, 고려왕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뛰어난 조각장의 솜씨를 빌려 탄생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석불입상은 좌우로 빗은 머릿결 위로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 불상의 머리에 얹는 관)을 썼고 두 손으로 청동제 꽃을 들고 있다. 널찍하고 명료한 이목구비는 멀리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며, 불상의 재료인 압도적인 크기의 화강암에서 느껴지는 육중함은 고려의 권위와 상징을 보여준다. 논산 관촉사(灌燭寺)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은 정제미와 이상미를 추구한 통일신라 조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조각상으로,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독창성과 완전성이 뛰어나 가치가 충분하다. 이 석불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고려 광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승려 조각장 혜명대사(慧明大師)의 주도로 제작되었다. 절의 역사를 적은 사적비에 의하면 반야산에서 발견한 큰 돌을 가져다 혜명대사(慧明大師)가 석공 100명과 함께 공사를 시작하여 37년이 지난 목종 9년(1006)에 불상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불상이 너무 커서 이를 똑바로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명의 동자가 강가에서 흙장난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동자들은 3개로 나눠진 불상을 올리기 위해 평지에 불상의 아랫부분을 먼저 세운 다음 그 주변에 모래 언덕을 만들어서 나머지 부분을 차례로 위로 밀어 올렸다. 여기서 실마리를 얻은 혜명대사(慧明大師)는 이 방법을 따라해 거대한 석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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