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개국공신교서 국보324호
소 재 지;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국립진주박물관
「이제(李濟) 개국공신교서(開國功臣敎書)」는 조선 태조 원년(1392) 10월 배극렴(裵克廉), 조준(趙浚) 등과 더불어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운 이제(李濟)에게 내린 개국공신교서(開國功臣敎書)이다. 교서(敎書)는 국왕이 직접 당사자에게 내린 문서로서, 공신도감(功臣都監, 조선 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이 국왕의 명에 의해 신하들에게 발급한 녹권(錄券)에 비해 위상이 높다. 이제(李濟, ?∼1398)는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으로 본관은 성주이며,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셋째 딸인 경순공주(慶順公主)의 남편으로 흥안군(興安君)에 봉해졌다. 이후 태조 2년(1393) 우군절제사(右軍節制使)에 올랐지만 태조 7년(1398)의 이른바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 일파로 몰려 이방원(李芳遠)에게 살해당했다. 시호는 경무(景武)이다. 교서에는 이제가 다른 신하들과 대의(大意)를 세워 조선 창업이라는 큰 공을 세우게 된 과정과 가문과 친인척에 내린 포상 내역 등이 기록되어 있다. 교서의 끝부분에는 발급 일자와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는 어보(御寶)가 찍혀 있다. 이 어보는 1370년(공민왕 19년) 명나라에서 내려준 고려왕의 어보로서, 조선 개국 시점까지도 고려 인장을 계속 사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교서(敎書)는 개국공신교서(開國功臣敎書)로서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어 그 역사적·사료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최초의 공신교서(功臣敎書)의 형식을 알려주고 있는 귀중한 문서이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