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륜부
감실
수마노탑 중수비
제1 탑지석
제4 탑지석
금합, 은합
염주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331호
소 재 지; 강원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410(고한리 산214)
「정선 정암사(淨巖寺) 수마노탑(水瑪瑙塔)」이 있는 정암사(淨巖寺)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로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받아 귀국한 후,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정암사(淨巖寺)에는 수마노탑(水瑪瑙塔)을 바라보는 자리에 적멸보궁(寂滅寶宮, 법당 내 부처의 불상을 모시는 대신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으로 바깥이나 뒤쪽에 사리탑이나 계단을 설치해 봉안함)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통도사, 오대산 중대, 법흥사, 봉정암의 적멸보궁(寂滅寶宮)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수마노탑(水瑪瑙塔)이라는 명칭은 불교에서 금·은과 함께 7보석 중의 하나인 마노(瑪瑙)와 관련이 있으며,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진신사리(眞身舍利)를 가지고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慈藏)의 도력에 감화하여 준 마노석(瑪瑙石)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 해서 물 ‘수(水)’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水瑪瑙塔)’이라 불렀다는 설화가 전한다. 수마노탑(水瑪瑙塔)은 전체 높이가 9m에 달하며,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1층 탑신에 감실(龕室, 작은 불상 등을 모셔둔 곳. 석탑 안에 사리나 불상을 봉안하려고 탑신 내에 감실을 둠)을 상징하는 문비(門扉, 석탑 초층 탑신부에 조각된 문짝을 말함. 내부 공간이 있음을 의미)가 있고, 그 위로 정교하게 다듬은 모전(模塼, 석재를 벽돌형태로 가공하여 쌓은 석탑)석재를 포개어 쌓았으며, 옥개석(屋蓋石, 탑신석 위에 놓는 지붕같이 생긴 돌)의 낙수면(탑의 옥개석 위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경사면)과 층급받침(옥개석을 괴어 받치는 층단이 보통 4단 내지 5단임) 단 수를 층별로 일정하게 쌓았다. 이처럼 수마노탑(水瑪瑙塔)은 국보 30호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등 신라 시대 이래 모전석탑(模塼石塔)에서 시작된 조형적인 안정감과 입체감 그리고 균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어 늦어도 고려 시대 이전에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1972년 수마노탑(水瑪瑙塔) 해체 당시에 함께 나온 탑지석(탑의 건립 이유,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로 탑 안에 넣어 둠)은 조성역사, 조탑기술 등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국보 21호)·다보탑(국보 20호)을 포함해 탑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희소한 탑이기도 하다. 수마노탑(水瑪瑙塔)은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석회암 지대라는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고회암(苦灰巖, 돌로마이트: 백운암이라고도 하며, 탄산염 광물암의 퇴적암)으로 제작되었고, 쇠퇴한 산천의 기운을 북돋운다는 ‘산천비보(山川裨補) 사상’과 사리신앙을 배경으로 높은 암벽 위에 조성된 특수한 석탑이다. 특히, 탑지석을 비롯한 자료에서 수리기록과 연혁을 알 수 있고,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조성된 진신사리(眞身舍利) 봉안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점에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