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인원
석마,문인석,망주석,석양,석호
석마
북돌
석마
망주석
석호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사적361호
소 재 지; 서울 동대문구 홍릉로 90(청량리동 204-2) 외
영휘원(永徽園)은 조선 26대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의 후궁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嚴氏, 1854∼1911)의 무덤으로 엄귀비(嚴貴妃)는 철종(哲宗) 5년(年) 증찬정(贈贊政) 엄진삼(嚴鎭三)의 장녀(長女)로 태어나 8세에 경복궁(景福宮)에 입궐(入闕)하여 민비(閔妃)의 시위상궁(侍衛尙宮)이 되었다. 민비(閔妃)가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시해(弑害)된 후 아관파천(俄館播遷)때 고종(高宗)을 모시고 후궁(後宮)이 되어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을 출산하였다. 1911년 7월 20일 58세로 별세(別世)하였으며 위패(位牌)는 궁정동에 있는 칠궁(七宮)에 봉안되어 있다. 엄귀비(嚴貴妃)는 신교육(新敎育)에 관심을 갖고 양정의숙(養正義塾) 1905 광무(光武)9년과 진명여학교(進明女學校) 1906년를 설립(設立)하였으며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 현 숙명여학교(現 淑明女學校)의 설립에도 거액을 기부하는 등 근대교육발전(近代敎育發展)에 크게 공헌하였다.
숭인원(崇仁園)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皇太子)인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영친왕(英親王)의 첫째아들 이진(李晋, 1921∼1923) 원손(元孫)의 무덤이다. 원손(元孫)은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 이씨(방자)의 첫째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에 황태자(皇太子) 내외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전에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사하였다. 순종황제(純宗皇帝)가 원손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을 내려 원(園)을 조성하였다. 봉분(원침)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등을 배치하였고, 원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등이 있다. 석물과 봉분의 크기는 다른 원에 비해 작게 조성하였다. 원래 이곳은 이왕가(李王家)의 가족묘지(家族墓地)로 정해 놓았던 곳이며 명성황후(明成皇后) 민비(閔妃)의 릉(陵)인 홍릉(洪陵)이 있어 이 일대를 홍릉(洪陵)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이 릉(陵)은 1919년 3월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에 고종황제(高宗皇帝)와 합장하기 위해 천장하였다. 기록으로는 정자각(丁字閣) 남쪽의 비명(碑名)에「순헌엄비영휘원(純獻嚴妃永徽園)」이라 각자(刻字)되어 있고 후면(後面)의 비문(碑文)은「순헌귀비엄씨철종오년갑인십일월초오일생 기미선입궁광무원년탄왕세자봉귀인사년봉순빈사궁호경선오년진봉비칠년책황비○○칠월이십일졸서수오십팔세추호순헌팔월이일장우양주천수산인좌원원호영휘○○(純獻貴妃嚴氏哲宗五年甲寅十一月初五日生 己未選入宮光武元年誕王世子封貴人四年封諄嬪賜宮號慶善五年進封妃七年冊皇妃○○七月二十日卒逝壽五十八歲追號純獻八月二日葬于楊州天秀山寅坐原園號永徽○○)」하고 기록되어 있다.
※명칭변경; 영휘원(숭인원 포함) →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