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산군 묘 사적362호
소 재 지; 서울 도봉구 방학로17길 46(방학동 산77)
조선 10대 연산군(燕山君, 재위 1494∼1506)과 부인 거창 신씨(居昌愼氏)의 무덤이다. 연산군(燕山君)은 성종의 큰 아들로 성종 7년(1476)에 태어나 1494년 왕위에 올랐다. 부인 거창 신씨(居昌愼氏)는 영의정(領議政) 거창부원군(居昌府院君)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연산군(燕山君)의 휘(諱)는 융(㦕)이며 성종(成宗) 7년 11월 6일에 탄생하여 성종(成宗) 14년(1483) 2월 6일에 세자(世子)로 책봉되었고 성종(成宗) 25년(1494), 12월 29일 성종(成宗)이 창덕궁(昌德宮)에서 승하하자 즉위(卽位)하였다. 연산군(燕山君)은 두번씩이나 사화를 일으키는 등 성품의 광폭함이 드러나자 진성대군(晋城大君)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1506년 왕직을 박탈당하고 연산군(燕山君)으로 강봉되어 강화(江華) 교동(喬洞)에 추방되었다가 그해 11월 중종원년(中宗元年, 1506년)에 31세(歲)로 병사(病死)하였다. 중종(中宗) 7년(1512) 12월에 폐비(廢妃)된 부인(夫人) 신씨(愼氏)가 상언(上言)하여 묘(墓)를 강화(江華)에서 양주군(楊州郡) 해등면 원당리(현 도봉구 방학동)으로 이장(移葬)하기를 청하여 중종(中宗) 8년(1513) 2월 20일 왕자군(王子君)의 예(禮)로 이장(移葬)하고 양주군(楊州郡) 관원(官員)으로 하여금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무덤 주변에는 연산군(燕山君)의 딸과 사위의 무덤도 있으며, 혼유석·장명등·향로석 등 석물이 서 있다. 묘비석 앞면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 새겨 있고, 뒷면에는 ‘정덕팔년이월이십일장(正德八年二月二十日葬)’이라 새겨 있다. 부인신씨(夫人愼氏)의 묘비(墓碑)는 전면(前面)에 '거창신씨지묘(居昌愼氏之墓)' 후면(後面)에 '유월이십육일장(六月二十六日葬)'이라 새겨져 있다. 그 밖에 연산군(燕山君)묘 앞에는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義貞宮主) 조씨(趙氏)의 묘와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徽順公主)와 사위 구문경(具文璟)의 묘가 있다.
※명칭변경; 연산군 묘 → 서울 연산군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