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

경릉

경릉 수복방

경릉 왕릉

경릉 왕비릉

 경릉 왕비릉

경릉 정자각 

창릉

창릉 왕릉

창릉 왕비릉 

창릉 정자각

명릉

 명릉왕릉, 인현왕후릉 

 명릉 왕릉, 인현왕후릉

명릉 인원왕후릉

명릉 정자각 

익릉

익릉

익릉

익릉 정자각

익릉 석인 석수 

홍릉 

홍릉

홍릉

홍릉

홍릉 정자각 

홍릉 비각

홍릉 정자각과 비각

서오릉

소 재 지;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30-1

서오릉은 5개의 왕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오릉(西五陵)은 추존(追尊)된 덕종(德宗)과 동비(同妃) 소혜왕후(昭惠王后)의 경릉(敬陵), 제8대 예종(睿宗)과 동계비(同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의 창릉(昌陵), 제19대 숙종(肅宗)과 동제1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 동제2계비 인원왕후(仁元王后)의 명릉(明陵), 숙종(肅宗)의 원비(元妃)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익릉(翼陵), 제21대 영조(英祖)의 원비(元妃) 정성왕후(貞聖王后)의 홍릉(弘陵)의 5릉(陵)이 55만(萬)3천여평(千餘坪)의 한 경역내(境域內)에 있으며 동구릉(東九陵) 다음으로 능(陵)이 많이 모여 있다. 서오릉(西五陵)에 최초(最初)로 능기(陵基)가 택정(擇定)되어 봉릉(奉陵)된 것은 경릉(敬陵)이다.
경릉(敬陵)은 추존왕(追尊王) 덕종(德宗)과 동비(同妃) 한씨(韓氏)의 능(陵)으로서 세조(世祖)의 원자(元子)이며 왕세자(王世子)에 책봉(冊封)된 장(璋) 세조(世祖) 3년(1457년) 9월 춘추(春秋) 20세로 훙서(薨逝)함에 길지(吉地)로서 고양(高陽) 동(東) 봉현(蜂峴)이 거론(擧論)되고 부왕(父王)인 세조(世祖)가 친행(親幸)하여 능지(陵地)로 택정(擇定)된 것이다. 덕종(德宗)은 세자시(世子時) 훙서(薨逝)하여 의경묘(懿敬墓)로 하였으나 성종(成宗) 7년(1476년) 덕종(德宗)으로 추존(追尊)되고 의경묘(懿敬墓)를 경릉(敬陵)으로 추숭(追崇)하였다.
경릉(敬陵) 이후 덕종(德宗)의 弟 예종(睿宗)의 창릉(昌陵)이 설릉(設陵)되고 200여년(餘年) 뒤 숙종(肅宗) 원비(元妃) 김씨(金氏)의 익릉(翼陵)과 숙종(肅宗)과 동제1계비 민씨(閔氏), 제2계비 김씨(金氏)의 명릉(明陵)이, 30여년후인 영조(英祖) 33년(1757년)에 영조(英祖) 원비(元妃) 서씨(徐氏)의 홍릉(弘陵)이 마지막으로 설릉(設陵)되고 이후(以後) 서오릉(西五陵)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에는 순창원(順昌園)과 수경원(綏慶園) 및 대빈묘(大嬪墓)의 2원(園) 1묘(墓)가 있다.
조선조왕실(朝鮮朝王室)의 묘제(墓制)는 왕(王)과 왕비(王妃)는 능(陵)으로, 왕(王)의 생모(生母)인 사친(私親)이나 왕세자(王世子) 및 그 빈(嬪)은 원(園)으로, 대군(大君), 공주(公主), 옹주(翁主), 후궁(後宮)은 묘(墓)로 품격(品格)에 따라 차등(差等), 구분(區分) 호칭(呼稱)하였다.
순창원(順昌園)은 명종(明宗)의 제1자인 순회세자(順懷世子)나 세자빈(世子嬪) 공회빈(恭懷嬪) 윤씨(尹氏)의 원(園)으로서 세자(世子)는 명종(明宗) 18년(1563년) 13세(歲)의 나이로 요절(夭折)하여 이곳에 장사(葬事)지냈으며 조선왕조(朝鮮王朝) 최초(最初)의 원(園)이다.
수경원(綏慶園)은 장조대왕(莊祖大王)의 사친(私親)이며 영조(英祖)의 후궁(後宮)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원(園)이다. 영빈이씨(暎嬪李氏)는 영조(英祖) 40년(1764년) 훙서(薨逝)하여 경기(京畿) 고양(高陽) 연희(延禧) 신촌리(新村里)에 설원(設園)하였으며 한일합병(韓日合倂) 이후(以後)인 1920년대 당시(當時)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가 수경원(綏慶園) 인근(隣近)에 개교(開校)되어 학교(學校)가 확장(擴張)되면서 학교(學校) 교내지(校內地)의 일부(一部)에 수경원(綏慶園)이 위치(位置)하게 됨에 따라 200여년(餘年)이 지난 1968년 6월에 이곳 서오릉(西五陵) 경내지(境內地)로 천장(遷葬)하였다.
대빈묘(大嬪墓)는 경종대왕(景宗大王)의 사친(私親)이며 숙종(肅宗)의 후궁(後宮)인 대빈장씨(大嬪張氏)의 묘(墓)이다. 희빈장씨(禧嬪張氏)는 숙종(肅宗)의 후궁(後宮)이 되고 왕비(王妃)와 계비(繼妃)의 소생(所生)이 없어 장씨(張氏) 소생(所生) 윤(昀)이 왕세자(王世子)로 책봉(冊封)된 숙종(肅宗) 14년(1688년) 왕비(王妃)가 되었으나 숙종(肅宗) 20년(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강빈(降嬪)된 후 동(同) 27년(1701년) 무고(誣蠱)의 옥(獄)으로 폐빈(廢嬪), 사사(賜死)되고 경기(京畿) 광주(廣州) 오포(五浦) 문형리(文衡里)에 설묘(設墓)되었으며 경종(景宗) 2년(1722년) 왕산부대빈(王山府大嬪)으로 추존(追尊)되었고 269여년(餘年) 후(後)인 1969년 6월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로 천장(遷葬)됨으로써 숙종(肅宗)의 명릉(明陵)과 같은 서오릉(西五陵) 경역내(境域內)에 있게 된 것이다.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엔 1960년대(年代)에 설치(設置)된 군(軍) 주둔지(駐屯地)가 있다. 상당(相當)한 면적(面積)에 이르는 이 주둔지(駐屯地)는 대북한(對北韓)과의 대치상황(對峙狀況)에서 군사목적상(軍事目的上) 설치(設置)된 것이기는 하나 그 위치(位置)가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 능역(陵域)인 만큼 능역(陵域)으로서 보존(保存)되도록 환원(還元)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재실(齋室)은 동구릉(東九陵)의 예(例)와 같이 각(各) 능(陵)마다 있지 아니하고 서오릉(西五陵) 전역(全域) 아우르는 재실(齋室)이 서오릉(西五陵) 정면(正面) 출입로변(出入路邊)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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