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창릉(昌陵)
창릉(昌陵)
8대 예종(睿宗)
- 위치 :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 지정번호 : 사적 제198호
- 조성시기 : 1469년(예종 2)
- 능의구성
창릉은 서오릉의 영역 내의 왕릉으로 조영된 최초의 능으로, 제8대 예종(睿宗)과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의 한씨(韓氏) 능이다. 병풍석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봉분 주위에 난간석을 두르고 있다. 석물 배치는 일반 왕릉과 같고, 양쪽 능침 아래 중간에 정자각과 홍살문을 잇는 축의 양 옆으로 수라방, 수복방 등이 대칭하여 배치되어 있다.
왕비 능침의 문석인은 왕릉과 달리 왼손에 지물을 쥐고 있으며 투구가 길고 짧은 상모(象毛)가 있다. 허리띠는 좌에서 우로 대각선을 이루고 있다. 무른 석재를 사용한 탓인지 다른 왕릉에 비해 풍화가 심하여 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 예종릉 앞 장명등은 지붕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 능의역사
예종은 1469년(예종 2) 11월 28일 경복궁 자미당에서 20세의 나이에 승하하였다. 능호를 창릉이라고 하여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영하였다. 1498년(연산군 4) 12월 23일에는 안순왕후가 승하하여 이듬해 2월 14일 창릉에 안장되었다.
- 예종(睿宗) 생애이야기
예종은 세조와 정희왕후와의 사이에 둘째 아들로 1450년(세종 32) 1월 1일 사저에서 태어났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18세에 요절하였을 때, 의경세자의 아들인 원손 월산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이 적통계승의 원칙에 맞는 것이었으나, 월산군은 불과 4세의 어린 아이였으므로 그 해 8세가 된 세조의 둘째인 해양대군(훗날 예종)이 1457년(세조 3) 11월 15일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1468년 9월 7일 19세의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았다. 성년이 되지 않아 모친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한명회, 신숙주 등의 중신이 섭정하는 원상제도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병약했던 예종은 재위 1년 2개월 만에 요절하였다.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각도의 병영에 속한 전답인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게 하여 백성들을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세조 때 입안하였던 『경국대전』을 완성하였으나, 채 반포하지 못하고 1469년 11월 28일 20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하였다.
- 일화
예종은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이 지은 야사모음집『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예종이 부왕 세조가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건강을 해쳤다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종이 세자일 때 세조가 병환이 생기니 수라상을 보살피고 약을 먼저 맛보며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한잠도 못 잔 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세조가 돌아가매 슬픔이 지나쳐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건강을 해치게 되어 이 해 겨울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韓氏) 생애이야기
안순왕후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태어났다. 예종의 첫째 부인 장순왕후가 세자빈의 신분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1462년 가례를 올리고, 1463년 예종의 즉위와 동시에 왕비가 되었다. 예종이 재위 1년 2개월만에 승하하자 1471년(성종 2) 인혜대비에 봉해지고, 1497년(연산군 3)에는 명의대비에 진봉되었다.
예종과 안순왕후 사이에는 제안대군이 있었으나, 할머니 정회왕후의 뜻에 따라 덕종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세자에 책봉되어 왕위를 이어받지 못하였다.
안순왕후는 1498년(연산군 4) 12월 23일 승하하여 이듬해 2월 14일 부군인 예종이 잠든 창릉에 안장되었다.
2.공릉(恭陵)
공릉(恭陵)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 지정번호 : 사적 제205호
- 조성시기 : 1461년(세조 7)
- 능의구성
공릉은 장순왕후의 능이다. 그녀가 세자빈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세자빈묘로 간략히 조영하였다.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도 없으며, 일반적으로 왕릉에 세워지는 망주석도 생략되었다. 그러나 석양과 석호가 호위하고 있는 봉분은 그 크기가 크며 혼유석과 장명등, 문석인과 석마가 놓여 있다. 석물은 조선시대 초기 형태인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석양은 네 발을 모으고 곡장(曲墻)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석호와 같이 악귀를 쫓는 기능을 한다. 이 석양은 얼굴과 뿔은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몸통은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한편 석호는 석양과는 달리 앉은 자세로 되어 있다. 봉분 뒤 좌우에 1쌍이 배치되어 있는데 위엄이 있고 용맹한 호랑이라기보다는 귀여운 고양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곡장 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악귀를 쫓는 벽사의 기능을 한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가 ㄱ자로 꺾인 점이 특징적이다.
- 능의역사
장순왕후가 1461년(세조 7) 12월 5일 세자빈의 신분으로 승하하자 세조는 이듬해 2월 17일 장순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2월 25일 파주 남쪽의 언덕에 안장하였다. 1470년(성종 1) 1월 22일 능호를 공릉이라 했고, 1472년 1월 11일에 장순왕후로 추존했다. 그러나 왕후로 추존된 후에도 세자빈묘로 조영한 능에 더 이상의 상설을 하지는 않았다.
-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韓氏) 생애이야기
조선 8대 예종의 세자비인 장순왕후 한씨는 1445년(세종 27) 1월 16일 당대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딸로 태어났다. 명문가의 딸이면서 아름답고 정숙하여 1460년 4월 11일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책봉된 지 1년 7개월만인 1461년(세조 7) 11월 30일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인해 그 해 12월 5일 안기의 집에서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승하하였다.
그녀의 아들인 인성대군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유년 시절에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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