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중생의 간절한 발길, 거르지 않는구나
유신리 유천마을 중바우골
5m 자연석에 4.3m 규모로 조성
해거름에 온전한 모습 잘 드러나
세월호 참사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땀 흘리는 이적 보이기도

보성군 율어면 유신리 유천마을에서 속칭 ‘중바우골’이라는 골짜기의 큰 자연석에 조성돼 있는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지금은 일월사 종무소 좌측 보호각 아래 잘 보존돼 있다.
국가보물로 지정돼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인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을 찾아 전라남도 보성으로 향했다. 장흥 보림사에서 출발해 찾아 들어가는 길인데 굽이굽이 어지럽다. 마애불은 주소상으로는 일월사가 위치한 전남 보성군 율어면 유신길 195에 위치하고 있다. 거리상으로는 30여 km가 남았는데도 시골길이라 찾아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다. 직선거리로는 아주 가까운 거리지만 산 하나를 빙빙 돌아 들어가야만 찾아 들어갈 수 있다. 이 지역 보성군 율어면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해방구로 등장한다. 이념대립의 첨예한 다툼을 다루는 이 소설의 문학비가 보성 율어면 유신리 저수지 인근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이 위치한 곳(전남 보성군 율어면 유신리 산 125-1) 바로 옆에는 일월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상당한 사격을 이루고 있다. 시골길을 돌고 돌아야만 도착하는 일월사는 보성 존제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도량 좌측에 보호각을 지어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을 보존하고 있다.

보호각 설치 이전의 모습(문화재청 사진).
이 마애불은 유신리 유천마을에서 속칭 ‘미륵덩이’ 혹은 ‘중바우골’이라는 골짜기의 ‘중바우’라고 일컫는 큰 자연석이 있는데 이 암벽의 서북쪽 평평한 면에 총높이 4.3m, 좌상고(좌불상 높이) 2.1m 규모로 조성돼 있다. 마애불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 존제사(尊帝寺)로 알려진 이곳에는 세로 5m, 가로 4.3m 정도의 큰 바위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눈, 코, 입이 뚜렷한 얼굴과 앙련(仰蓮, 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이 새겨진 대좌(臺座, 불상을 앉히는 단)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손모양은 부처님이 설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 불상 가운데는 흔치 않다. 불상의 법의(法衣, 부처님이 입는 옷)는 두 어깨를 감싼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두광(頭光, 부처의 머리 뒤에 표현된 둥근 빛의 모양)과 신광(身光, 부처의 몸 뒤에 표현된 둥근 빛의 모양)이 분리되어 있으며, 둘 다 둥근모양이다. 이 마애불은 고려초기의 우수한 작품이다.”
사찰이 존재했던 시기에 마애불이 조성된 것으로 보고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작품으로 유추하고 있다. 존제사가 건립되기 이전에 이미 마애불이 조성돼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다.
보성군은 이 마애불을 소개하면서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 그 예가 거의 없는 양어깨의 ‘어깨걸이개’라는 특이한 의문(법복의 어깨문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북위나 북조시대 금동불에서 유행을 보았던 양식으로, 이곳 전남지방에서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의 불상의문 연구에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성연대는 9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면에서 바라본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조성한 지 오래된 마애부처님이라 우여곡절도 많아 보인다. 우선 마애부처님의 코 모양이 온전하지 않다. 어느 마애부처님이 그러하듯 부처님의 코를 베어서 약방문을 삼으면 아들을 얻는다는 내용을 비롯해 다야한 병마를 이긴다는 소문에 마애부처님의 코가 성한 곳이 없다.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의 코도 이런 수난을 당했다.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은 영험담도 많이 전해진다. 누구라도 이곳에서 일심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 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월사를 찾아 기도하는 이들이 많고 사찰의 불사도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또한 유신리 마애부처님은 국난(國難)이나, 변고(變故)가 있을 때는 땀을 흘리는 신이(神異)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 약 2주 전인 2014년 4월 초에 물로 추정되는 맑은 액체가 마애불의 하단부에서 이슬의 형태로 맺히다가 점차 많은 양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걱정인 된 사찰 측은 문화재청에 문화재 훼손이 우려되어 해당 내용을 안내하고 방지책 등을 질의하였지만 뚜렷한 원인이나 방지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에도 마애부처님이 땀을 흘리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저녁에 촬영한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모습. 사진제공=일월사
아이러니한 건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는 마애여래좌상이 그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문화재청이 보호각을 마련하기 전 2000년대 초에 촬영한 자료에 따르면 마애불의 형태가 상당히 또렷하게 나타나 보이나 보호각을 세우고 이끼를 벗긴 후에는 온전한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일월사 관계자는 “해거름이나 야간에 조명을 설치해 촬영을 하면 온전한 마애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과잉보호로 인해 오히려 원래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 듯하다.
보성=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3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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