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평장리 불두와 마애공양보살상
마을로 내려가 민초들 품은 부처님과 보살님
자연암석 위해 불두 얹어
마을재앙과 나라위기 극복 기원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보살상은
민중들과 생사고락 함께 한 듯
지금은 소외와 외면으로
생명력 불어넣을 인연 기다려
원주시 소초면 평장리에 자리한 ‘원주 평장리 석조불두’는 고려시대 때 조성한 미륵불로 추정한다.
강원도 원주에서 횡성으로 가는 42번 국도 옆 한적한 공터에 ‘원주 평장리 석조불두’가 있다. 원래 이 불두는 원주시 소초면 교항리와 평장리 경계의 언덕 바위에 불신(佛身)을 조각하고 그 위에 불두(佛頭)를 얹어 놓았던 것인데 1980년 무렵 도로건설로 불신은 땅속에 매몰되고 불두만 소초면 교항리 마을회관 앞에 있던 것을 현재 평장리 도로 옆 공터에 봉안하며 명칭도 ‘원주 교항리 석조불두’에서 ‘원주 평장리 석조불두’로 변경했다.
1998년 9월5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4호로 지정돼 있어 보존을 위해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주변이 공장지대이고 후미진 곳이어서 인적이 드문 곳이 되었다. 평장리 불두는 임진왜란 때 왜구를 불리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하지만 조성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한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은 투박해 보인다. 얼굴만 평가하자면 폭 1.5m, 높이 1m, 두께 50cm의 장대한 불두 상호는 늠름한 기개를 지니고 있다. 이마에 백호(白毫)가 있어 무량세계에 광명을 비춘다.
둥근 상호에 콧날 역시 둥그스름하고 큼직한 형태로 길게 내려와 힘이 있다. 목까지 내려온 귀는 부처님 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굳게 다문 입술을 일자로 상호와 비례해서 조각했고, 입술 아래 턱에 길게 ‘일자(一)’가 그어져 있어 입체감을 도드라지게 했다. 머리 위는 평평하다. 아마도 이곳에는 사각형의 판석(板石)이나 보개(寶蓋)를 올려 경외심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불두를 올려놓은 ‘원주 평장리 석조불두’ 모습.
함께 동행한 지인이 “부처님 얼굴이 지역을 지키는 홍위병의 모습 같다. 거대한 사막에 세워놓고 불두만 얹어 놓아도 무사태평할 것 같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사각형의 납작한 얼굴에 투박하게 표현되는 눈, 코, 입의 모습과 머리만을 따로 조성하여 자연암석 위에 올려놓은 점은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특징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어 고려시대에 조성됐음을 알 수 있다.
주강현 선생의 표현처럼 이 불상은 ‘마을로 간 미륵’이 아닌가 추측된다. 세월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닌 불두지만 처음 봉안했을 때는 많은 민초들의 우러름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다행스럽게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기는 하지만 후미진 한적한 곳에 자리한 마애부처님은 외로워 보인다.
평장리 불두가 바라보는 200여m 좌측방향에는 ‘원주 평장리 마애공양보살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애보살상도 1998년 9월5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이 마애공양보살상 역시 조성 당시에는 민초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을 것이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끼와 석태에 묻혀 온전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후미진 개울가에 자리해 보존 차원에서 복개(覆蓋)를 해서 빗물을 흘러내리고는 있으나 음지의 습기를 이기지 못하고 온전한 보존은 어려운 상황이다.
마애공양보살상은 자연석 암벽 면에 얕은 선각으로 조각됐다. 보살상이 선각된 암벽은 높이 약3.7m, 너비는 6.2m 크기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양손에 꽃 모양의 공양물을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고려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애보살상은 얼굴 부분과 상체, 팔목 등 일부에서 총탄에 의한 훼손이 확인되지만 비교적 상태는 양호하다.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앉은 모습이다. 유관상으로 잘 보이지 않아 자세하게 설명을 해 보자면 양손을 어깨 높이까지 올렸고 왼손은 공양물이 담긴 그릇을 받치고 있고 오른손은 그릇을 잡은 형태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좌우측으로 관대(冠帶)가 보이고 아랫쪽으로는 보배스러운 머리카락인 보발(寶髮)을 새겨 넣었다. 뒤쪽으로 묶은 일부 머리카락이 어깨근처까지 내려와 있다.
‘원주 평장리 마애공양보살상’은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상호는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로 눈과 코는 선각으로 뚜렷하게 남아 있다. 입 부분은 총탄에 의해 훼손되었고, 턱 아래쪽으로 한 줄의 선을 넣어 양감을 강조하고 있으면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를 표현했다. 옷을 입은 형태도 보이는데 몇 가닥의 선으로 표현해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방향으로 걸치고 있다.
하체에도 몇 가닥의 선이 보인다. 팔과 다리 역시 통통한 편이며 양쪽 손목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고 다만 팔찌를 끼고 있는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얕은 선으로만 조각을 했는데도 원만한 상호와, 양감이 강조된 신체, 옷주름, 머리카락, 공양물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돼 있다.
땅에 무릎을 꿇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은 주로 탑 앞에 위치하는 형태인데 대표적인 것이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이다.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도 이러한 형태로 대표적인 고려시대의 석조각들이다. 학계에서는 이 마애공양보살상 역시 고려초기 작품으로 설명하고 있다.
‘원주 평장리 석조불두’와 ‘원주 평장리 마애공양보살상’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소외와 외면이다. 분명 이 석조불두와 마애보살상은 조성되었을 당시에는 성보로 예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불자들에게조차 예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후미진 곳으로 옮겨지게 되어 그저 오래된 문화재에 지나지 않는 화석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6·25전쟁의 참화로 총탄의 상처를 입은 이 부처님과 보살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인연이 연결되길 기원하며 발길을 돌렸다.
원주=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37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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