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성(金官城) 파사석탑(婆娑石塔)
금관(金官)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婆裟石塔)이라는 것은 옛날에 이 읍이 금관국(金官國)이었을 때 세조(世祖,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비인 허황후(許皇后) 황옥(黃玉)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무신(戊申, 48)에 서역(西域)의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 공주(公主)가 부모(二親)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장차 동쪽으로 가려 하였는데 파도신(波神)의 노여움에 막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말하였다. 부왕(父王)이 이 탑을 싣고 가라고 명하니 곧 쉽게 건널 수 있어서 남쪽 해안에 정박하였다. 붉은 돛(緋㠶), 붉은 깃발(茜旗), 주옥(珠玉) 등 아름다운 것을 실었기 때문에 지금 주포(主浦)라고 부른다. 처음 언덕 위에서 비단 바지(綾袴)를 풀은 곳은 능현(綾峴)이라고 하며, 붉은 깃발(茜旗)이 처음 들어온 해안은 기출변(旗出邊)이라고 한다.
수로왕(首露王)이 그를 맞이하고 함께 나라를 다스린 것이 150여 년이었다. 이때에 해동(海東)에 아직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없었다. 대개 불교(像敎)가 아직 들어오지 못하여 토착인들이 신복하지 않았으므로 본기(本記)에는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
제8대 질지왕(銍知王) 2년 임진(壬辰, 452)에 이르러서야 그 땅에 절을 세웠다. 또 왕후사(王后寺)를 창건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복을 빌고 있다. 아도(阿道) 눌지왕(訥祇王)의 시대로 법흥왕(法㒷王)대의 전이다. 남쪽의 왜(倭)를 진압하고 있는데 가락국 본기(駕洛國本記)에 자세히 보인다.
탑(塔)은 모가 4면으로 5층이고 그 조각이 매우 특이하다. 돌에 미세한 붉은 반점 색(赤班色)이 있고 그 질은 무르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본초(本草)≫에서 말하는 닭벼슬의 피(雞冠血)를 찍어 검사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금관국(金官國)은 또한 가락국(駕洛國)이라고도 하는데 본기(本記)에 자세히 실려 있다.
찬(讚)하여 말한다.
석탑을 실은 붉은 돛대 깃발도 가벼운데(載厭緋㠶茜斾輕)
신령께 빌어서 험한 물결 헤쳐왔다(乞靈遮莫海濤驚)
어찌 다만 황옥을 도와 건넜을 뿐이겠는가(豈徒到岸扶黃玉)
천년 동안 남쪽 왜의 침략을 막았다(千古南倭遏怒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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