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사(鍪藏寺) 미타전(弥陁殿)
서울(亰城)의 동북쪽 20리쯤 되는 암곡촌(暗谷村)의 북쪽에 무장사(䥐藏寺)가 있었다. 제38대 원성대왕(元聖大王)의 아버지 대아간(大阿干) 효양(孝讓), 추봉된 명덕대왕(明德大王)이 숙부 파진찬(波珍喰)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절이다. 그윽한 골짜기가 몹시 험준해서 마치 깎아 세운 듯하며, 깊숙하고 침침한 그곳은 저절로 허백(虛白)이 생길 만하고, 마음을 쉬고 도(道)를 즐길 만한 신령스러운 곳이었다.
절의 위쪽에 미타고전(彌陁古殿)이 있는데, 곧 소성대왕(昭成大王)또는 소성(昭聖)의 비(妃) 계화왕후(桂花王后)는 대왕(大王)이 먼저 세상을 떠났으므로 근심스럽고 창황하여 지극히 슬퍼하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이 상하였다. 이에 밝고 아름다운 일을 돕고 명복을 빌 일을 생각하였다. 서방(西方)에 아미타(弥陀)라는 대성(大聖)이 있어 지성(至誠)으로 귀의하면 잘 구원하여 와서 맞아준다는 말을 듣고, “이 말이 진실이라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라고 하고, 6의(六衣)의 화려한 옷을 희사하고 9부(九府)에 쌓아두었던 재물을 다 내어 이름난 공인들을 불러서 미타상(弥陁像) 한 구를 만들게 하고, 아울러 신중(神衆)도 만들어 모셨다.
이보다 앞서 절에 한 노승(老僧)이 있었는데, 홀연히 꿈에 진인(真人)이 석탑(石塔)의 동남쪽 언덕 위에 앉아서 서쪽을 향해 대중(大衆)에게 설법(說法)하는 것을 보고, 이곳은 반드시 불법(佛法)이 머무를 곳이라고 생각했으나 마음에 숨겨두고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바위가 우뚝 솟고 물이 급하게 흐르므로 장인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모두 좋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나 터를 개척하자 평탄한 곳을 얻어서 집을 세울 만하고 신령스러운 터전임이 완연했으므로 보는 이들은 깜짝 놀라면서 좋다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근래에 와서 불전은 무너졌으나 절만은 남아 있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태종(太宗)이 삼국을 통일한 뒤에 병기와 투구를 골짜기 속에 감추어 두었기 때문에 무장사(鍪藏寺)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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