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종(皇龍寺鍾) 분황사 약사(芬皇寺藥師) 봉덕사 종(奉德寺鍾)
신라(新羅) 제35대 경덕대왕(景德大王)이 천보(天寶) 13년 갑오(甲午, 754)에 황룡사(皇龍寺) 종(鍾)을 주조하였는데 길이는 1장 3촌이요, 두께는 9촌, 무게는 49만 7천 5백 81근이었다. 시주(施主)는 효정이왕(孝貞伊王) 삼모부인(三毛夫人)이요, 장인(匠人)은 이상택(里上宅) 하전(下典)이었다. 숙종(肅宗)때 다시 새로운 종(鍾)을 완성하니 길이가 6척 8촌이었다.
또 이듬해 을미(乙未, 755)에 분황사(芬皇寺)의 약사여래(藥師) 동상(銅像)을 주조하였는데 무게가 30만 6천 7백 근이요, 장인(匠人)은 본피부(本彼部) 강고내말(强古乃末)이었다.
또 황동(黃銅) 12만근을 희사하여 부왕이신 성덕왕(聖德王)을 위하여 큰 종 하나를 주조하고자 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그 아들 혜공대왕(惠恭大王) 건운(乾運)이 대력(大曆) 경술(庚戌, 770) 12월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공인들을 모아 능히 그것을 완성하여 봉덕사(奉徳寺)에 안치하였다. 절은 곧 효성왕(孝成王) 개원(開元) 26년 무인(戊寅, 738)에 부왕인 성덕대왕(聖德大王)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창건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명(鍾銘)에는 ‘성덕대왕신종지명(聖德大王神鍾之銘)’이라 하였다. 성덕대왕(聖德大王)은 곧 경덕(景德)의 아버지로 전광대왕(典光大王)이다. 종(鍾)은 본래 경덕대왕(景德大王)이 아버지를 위하여 시주한 금이었으므로 성덕종(聖德鍾)이라 한다. 조산대부(朝散大夫) 전태자사의랑(前太子司議郞) 한림랑(翰林郞) 김필월(金弼粤)이 임금의 교지를 받들어 종명을 지었는데, 글이 번다하므로 수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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