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효릉(孝陵)

효릉(孝陵)

12대 인종(仁宗)

-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8-4

- 지정번호 : 사적 제200호

- 조성시기 : 1544년

- 능의구성

      효릉(孝陵)은 조선 제12대 인종(仁宗)과 그의 비 인성왕후(仁聖王后) 박씨(朴氏)의 능이다.

효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난간()으로 연결한 쌍릉()의 제도로 썼으며, 왕릉에는 양우석()에 운채()와 면석()에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병석()을 돌리었다.

인종은 중종의 산릉역사(山陵役事)를 마치지 못하였음에 대해 자신의 장사는 검소하게 치루도록 했으며, 대윤(大尹)과 소윤(小尹)과의 권력 투쟁 관계였던 탓으로도 장례 절차와 능역을 소홀히 하였다. 그 후 인성왕비의 봉릉(奉陵)과 함께 병풍석 등의 석물을 개수하였다.
상설(象設)은
난간석(欄干石)을 터서 연결한 쌍릉 제도 형식이다. 왕릉은 면석(面石)
에는 12지신상과 우석(隅石)에 운채(雲彩)를 부조(浮彫)한 병풍석을 하고 있다.

 

- 능의역사

      중종15년 세자로 책봉되고 동39년 즉위하였으나 불과 재위 8개월 만에 31세로 승하하였다. 인성왕후 박씨는 1544년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선조 10년(1577) 64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당초 시대적인 상황으로 상례절차를 감쇄()하여 산릉()공사에 소홀한 점이 많았던 모양으로 선조() 10년에 효릉의 개수를 명하여 병석 등 석물()을 다시 고쳐 넣었다.  

 

- 인종(仁宗) 생애이야기

    인종은 중종의 맏아들로 중종10년(1515) 2월 25일 탄생하였고 3월 2일 어머니 장경왕후를 여의었다. 중종15년 세자로 책봉되고 동39년 즉위하였으나 불과 재위 8개월 만에 31세로 승하하였다. 인품이 어질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는 우애가 깊었다. 생전에 복성군에 대하여 은혜를 베풀었고 임종시에 부왕의 상을 마치지 못함을 송구히 여겨 부모의 릉(靖陵)에 묻히기를 유언하였다.

 

- 인성왕후(仁聖王后) 박씨(朴氏) 생애이야기

    인성왕후는 나주박씨 금성부원군 박용의 딸로 1524년(중종19년) 박씨 나이 11세 되던 해에 인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544년 11월 인종이 왕으로 즉위하고 왕비가 되었으며 이때 그녀의 나이 31세였다. 태어난 지 6일 만에 생모 장경왕후가 죽고 시기심이 많은 계모 문정왕후의 손에 자라야 했던 인종은 문정왕후에 의해 여러 차례 죽임을 모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인종은 효성이 부족함을 자책하고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명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인성왕후와의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았다고 전한다. 인종의 재위기간은 9개월이었으며 인성왕후는 인종 사망 후 32년간을 자녀없이 홀로 살다가 1577년 (선조 10)11월 경복궁에서 64세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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