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따라 지명 산책(1)
조용한 어촌마을 전하동 옛 이름은 ‘바드래’
유구한 역사·토속신앙·토착 부족명·지형조건서 유래
처용암·무거는 전설 서린 곳…병영 등은 관청소재지
남목 바람골은 원래 발안골…호계는 뻗은내에서
▲ 바드래로 불렸던 전하동의 옛 모습.
어느 고장이나 마을의 형성은 마을 뒤에 산이 있어서 땔감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산골짜기의 개울물이 마을 앞들의 논밭을 적시며 흘러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에 대체로 배산임수(背山臨水)형으로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뒷산에서 소를 먹이고 땔나무를 구하려 다니던 산골짜기, 등 넘어 산마루, 바위, 계곡, 읍내 시장을 다니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고갯길, 시내, 들과 강나루, 바닷가의 만곡과 연안에 솟아 있는 크고 작은 갯바위 등에도 저마다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것을 통칭하여 땅이름(地名)이라고 한다.
지명은 여러 유형으로 생겨나고, 또 불리어져 오는데, 일부는 지형지물의 생긴 모양과 위치, 높고 낮음, 넓고 좁음, 길고 짧음, 생긴 시기 등에 따라 붙여지기도 하고, 그 곳으로 흘러온 유민들이 자신들의 족명(族名)과 함께 숭배하던 지모신(地母神) 곰과 수(雄)신을 상징하는 이름, 자연을 경외(敬畏)시 하여 자연물에다 믿음을 담은 이름을 붙여놓기도 하였다. 또 역사적 큰 사건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지명과 또 무엇이 있거나 세워져서 붙여진 지명, 주요 산업 또는 생산물 때문에 붙여진 지명, 풍수설에 의한 이름, 시장이 서면서 매물전 등의 이름들이 지명으로 고착된 곳 등등 여러 유형의 지명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처음에 생긴 마을(골)을 중심으로 안쪽에 마을이 생기면 안골, 윗말, 갓안, 밧골, 뒷골, 후리(後里), 마을 앞에 산이 있으면 안산(案山), 여러 산골짜기에서 흘러온 냇물이 어울러 지면 어울물(어물) 또는 두물거리(아우내), 냇물이 마을과 들판을 돌아 흐르면 돌내(石川), 돈말(錢邑), 돈골(錢谷), 돌안 등의 지명을 낳고, 시냇물은 흐르다가 강물에 합수되어 바다로 이어지는데, 지형적 조건이 흡사하기 때문에 비슷하거나 같은 지명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또 고대 유민들이 동방을 향하여 이주해오면서 그들이 닿는 곳엔 언제나 그 족명(族名)을 「쇠(東)」 혹은 「밝·배」 등으로 칭하여 새내, 새벌, 한밝, 새밝골, 배내골 등의 이름을 붙여놓았고, 특히 우리민족의 수호신인 지모신(地母神) 곰을 숭배하여 곰말(熊村)·감나무골·금천·검단(곰각단)·굼골(우음이) 등으로 방사된 지명들과 수(雄)신에 제(祭)하던 곳에 성지골(聖地ㆍ聖基) 등 우리고장에도 그 유흔을 남기고 있다.
▲ 갓바위.
옛사람들은 그들이 숭배하던 여러 자연물에도 신격 내지는 해학적인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바위 하나에도 음·양의 이름으로 남근암, 갓바위, 촛대바위, 송곳바위, 붙임바위, 불선바위, 너럭바위, 처녀바위, 공알바위, 굼바위 등으로, 또 역사적 큰 사건이 있어서 파군산(북구 대안), 낙화암, 대왕암 등이 생겨났고, 관청 또는 이에 준하는 역원 등이 있었던 곳에 구영(舊營), 병영(兵營), 원골(院谷), 성내(城內) 등으로, 산성 또는 마성이 있었던 곳엔 산성, 성골 등으로, 봉화대 등이 있었던 곳은 봉대산, 봉화재 등, 광물의 산지 또는 제조점이 있던 곳은 달천, 퉁뫼산, 염포, 지통, 지화 등으로, 시전의 이름으로는 저자걸, 소전걸, 나무전걸, 옹기전 등으로, 전설이 서린 곳엔 처용암, 무거, 허고개, 망성 등의 지명들이 전해져 온다. 이렇듯 우리고장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도 지명 속에 담겨져 전해져 오고 있다.
▲ 마골산에 위치한 동축사.
또 옛사람들은 땅이름을 표기할 때 한자(漢字)를 빌어다 한글처럼 기록하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 역력하다. 신라고찰 동축사가 있는 산을 마골산(麻骨山)이라 부르는데, 이 산정의 서쪽에 염포정이 위치한 곳이 ‘새밭재’이다. ‘새밭재’의 표기를 보면, 조전령(鳥田嶺)·신전령(新田嶺)·삼소기(三所基)·계립령(鷄立嶺) 등 여러 가지 방편으로 기록하고 있다. 옛사람들은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가지고 우리땅이름을 본래 소리대로 기록하려는 부단한 노력들이 지명중에 담겨져 있음에 숙연해 진다.
1911년경의 「조선지지자료」에는 ‘새밭재산(鳥田嶺山)’으로, 비석골 뒷산의 한 묘갈에는 ‘신전령(新田嶺)’으로, 영조(英祖)22년(1746) 호랑이 5두를 잡아 절충(折衝)장군 작위를 가자 받고, 정축년(1757)에 또 호랑이 잡아 그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었던 전후장(全厚章)의 묘갈에는 ‘삼소기(三所基)’로, 현곡 이유수 선생의 저서 「울산지명사」에는 ‘계립령(鷄立嶺)’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
▲ 마골산의 새밭재.
마골산의 ‘마골(麻骨)’은 삼대(麻木)를 삶아 껍질을 벗기고 남은 줄기를 한자의 뜻으로 쓴 것이고, ‘계립(鷄立)’은 삼대(麻木)의 줄기를 지릅대 또는 재립대라 하는 것을 소리대로 이두(吏讀)식으로 쓴 것이 ‘계립(鷄立)’인데, 계립령(鷄立嶺)을 한자로 풀면 ‘닭이 일어선다’는 뜻이지만, 이것은 한자의 뜻풀이이고, ‘지르다(徑, 질러 가다)’의 뜻인 ‘지릅’을 이와 같이 쓴 것이다. 즉 ‘지릅고개’가 ‘지립고개’, ‘기립고개’ 등으로 불리다가 ‘계립고개(鷄立嶺)’으로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마골산의 새밭재도 이에 연유한다. ‘새밭재’는 ‘사잇고개’라는 뜻과 ‘지릅고개’의 뜻으로 기록한 것인데, 이는 다같이 ‘곧장 넘어 가는 고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명은 무조건 글자에 맞추어 풀이함은 금물이다. 지명은 오랜 세월 동안 음운이 변화해 오면서 본래의 뿌리 말에서 멀어져 엉뚱한 지명으로 변해있는 수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오십천(五十川)은 ‘새내(시내)’가 ‘신내’>쉰내>‘오십천’으로 변하였고, 동구 남목의 ‘바람골’은 산을 뜻하는 ‘발’과 안(內)이 결합된 ‘발안골’이 바란골>‘바람골’로 변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북구의 ‘호계(虎溪)’는 ‘뻗은내’가 벋내>벗내>번내>‘범내’로 음운이 변해온 것을 한자의 뜻으로 적은 것이 호계(虎溪)이고, 작은 산(小山·子山)의 뜻인 ‘아사달’은 ‘앗달’, ‘압달’로 불리다가 ‘아홉달’의 뜻인 구월산(九月山)이 되었다고 한다. 고성의 ‘삼일포’는 본래 사이를 뜻하는 ‘삳개’가 ‘살개’>사흘개>‘삼일포(三日浦)’로 기사한 것이고, 큰골의 뜻인 ‘말골’은 ‘말굴’로 변했다가 다시 ‘말구리’로 옮아가서 ‘말이 굴러 떨어진 골짜기’라는 지명유래를 낳기도 했다. 동구의 전하동(田下洞)의 토박이 지명은「바드래」이다. ‘바다’의 옛말은 ‘바들(바달)’·‘바래’·‘바대’등인데, 그중에 ‘바달’을 전(田)의 고훈(古訓)인 「받」과 ‘하(下)’의 훈(訓)인 「알」을 차자(借字)하여 ‘받+알=바달’로 기록한 것인데 이에 처소격 조사 ‘~에’가 붙어서 「바달에」(바드래)로 불러지고 있다. ‘전하(田下)’를 단순히 한자의 뜻대로‘밭 아래 마을’로 해석하면 본래의 뿌리 말과는 멀어지게 된다. ‘전하포(田下浦)’는 ‘바들(달)개’로 현대중공업의 입지 이전에는 바닷가에 연한 어촌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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