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권(卷第四十七)

 

열전(列傳) 제칠(第七)

해론(奚論) 찬덕(讚德)·소나(素那) 심나(沈那)·취도(驟徒) 부과(夫果) 핍실(逼實)·눌최(訥催)·설계두(薛罽頭)·김영윤(金令胤) 흠춘(欽春) 반굴(盤屈)·관창(官昌)·김흠운(金歆運)·열기(裂起) 구근(仇近)·비령자(丕寧子) 거진(擧眞) 합절(合節)·죽죽(竹竹)·필부(匹夫)·계백(階伯)

 

해론(奚論) 찬덕(讚德)

 

해론(奚論)모량(牟梁)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찬덕(讚德)은 용감한 뜻과 뛰어난 절개를 가져 당시에 이름이 높았다.

건복(建福) 27년 경오(庚午, 610)에 진평대왕(平大王)이 가잠성(椵岑城) 현령(縣令)으로 등용하였다.

다음 해 신미(辛未, 611) 겨울 10월에 백제(百濟)에서 군사를 크게 일으켜 와서 가잠성(椵岑城)을 백여 일 동안 공격하였다. 진평왕(真平王)은 장수에게 명령하여 상주(上州), 하주(下州), 신주(新州)의 군사로써 가잠성(椵岑城)을 구하게 하였다. 드디어 도착하여 백제인(百濟人)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찬덕(讃徳)이 그것을 분개하고 한탄하면서 병졸(士卒)에게 말하기를,

“3주(三州)의 군대와 장수가 적이 강함을 보고 진격하지 않고 성이 위태로운 데도 구하지 않으니, 이것은 의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의리없이 사는 것은 의리있게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이에 격앙되어 분발하여 싸우기도 하고 지키기도 하였는데, 양식과 물이 다함에 이르자 시신을 먹고 오줌을 마시기까지 하며 힘써 싸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봄 정월에 이르자, 사람들은 이미 지쳤고 성은 무너지려 하여 형세를 다시 원래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하늘을 우러러 크게 외치기를,

“우리 임금이 나에게 하나의 성을 맡겼으나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적에게 패하게 되니, 원컨대 죽어서 큰 귀신(大厲)이 되어 백제인(百濟人)을 다 물어 죽이고 이 성을 되찾겠다!”고 하였다.

드디어 팔을 걷어 부치고 눈을 부릅뜨고 달려 나가 느티나무(槐樹)에 부딪혀서 죽었다. 이에 성이 함락되었고 군사가 모두 항복하였다.

해론(奚論)은 나이 20여 세 때 아버지의 공으로 대나마(大奈麻)가 되었다.

건복(建福) 35년 무인(戊寅, 618)에 왕이 해론(奚論)금산(金山) 당주(幢主)에 임명하여 한산주(漢山州) 도독(都督) 변품(邊品)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가잠성(椵岑城)을 습격하여 그것을 빼앗았다.

백제(百濟)에서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왔다. 해론(奚論) 등이 백제군을 맞았고 군사들은 이미 서로 싸웠다. 해론(奚論)이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전에 나의 아버지가 여기에서 숨을 거두셨다. 내가 지금 또한 여기에서 백제인(百濟人)과 더불어 싸우니,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이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짧은 칼을 가지고 적에게 나아가 몇 명을 죽이고 죽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그의 가족을 돕기를 매우 후하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장가(長歌)를 지어 그를 조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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