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나르 석굴

 

그리스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초기불교석굴

인도 고대 안드라미술 전통 따르는
고대와 굽타기잇는 대표적 석굴군
​​​​​​​유일하게 비구니 승원 사례 보여

 

화려한 굽타시대 석굴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준나르 석굴 입구 전경. 사진=문명대

 
준나르(Junnar)는 고대 중요한 무역 및 정치 중심지였다. 준나르는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푸나와 나시크의 중간에 위치하는 도시인데 이 도시 주위에 있는 투르쟈, 시브네리, 만모디, 레니야드리의 4개의 언덕에 기원전1세기~기원후3세기에 걸친 150여개의 불교 석굴 군이 있다.

준나르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1세기의 그레코로만(Greco-Roman) 여행가들이었다. 그리스인들은 2세기에 석굴에 기증 비문을 남겼다. 다모라 코삼비(Damodar Dharmananda Kosambi)에 의하면 준나르의 실명은 타가라(Tagara)일 수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준나르(Junnar)라는 이름은 지르나나르가(Jirnanagar, 오래된 도시)의 축약형일 수 있다.

전반적으로 2~3세기 것이 많고, 비하라(僧院) 굴은 대부분 규모가 작다. 투르쟈 제3굴(기원전 1세기)은 극히 오래된 형식인 차이티야(禮拜堂) 굴로, 원당(圓堂) 뿐이며 전실(前室)이 없고 스투파 주위에 열주(列柱, 줄지어 선 기둥)를 둘렀다. 시브네리 제48굴은 차이티야 굴인데, 평면 천정이고 모양은 장방형, 열주는 없다. 정면에 아치형 창도 없고 외관으로는 비하라풍이며, 제1기 불교 석굴의 최후단계(3세기)의 것이다. 만모디 제40굴(2세기)은 미완성의 차이티야 굴로 정면 큰 아치 아래의 라크슈미와 두 마리의 코끼리, 두 쌍의 남녀 예배자 부조는 주목할 만하다. 레니야드리 제6굴(2세기)은 보존이 잘된 차이티야 굴이다. 제7굴(2세기)은 후세에 가네샤 당으로 고쳐졌으나, 나시크 제3굴과 꼭 닮았고, 큰 홀의 세 방향에 20개의 방을 가진 넓은 비하라이다.

보시자 대부분은 지방 주민이고 이 중 시바네리산의 51굴은 챠이티야 굴인데 이는 장자의 대표 상인이 기증한 것이다. 이 외에는 그리스인 3명, 샤카인 1명의 기증자가 기록되어 있고 샤카족 왕인 마하크샤트라파, 나하파나(우샤바다타의 장인)의 대신이 회당을 기증했다. 그러므로 2세기 초 크샤하라타가는 매우 넓은 토지를 영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유일하게 비구니 승원의 예도 보인다.

준나르 부근의 산에 150~200개에 가까운 석굴군이 있다. 대부분은 승려들의 방인데 챠이티야는 전부해서 10굴에 가깝고 그 장식법은 고풍으로 불상 등은 없다. 공창형(拱窓), 순형, 탑파형을 장식물로서 사용한다. 대체로 소형굴 뿐으로 크기에 있어서는 다른 곳의 대형 굴과 비할 수 없으나 종류는 많고 다른 곳에서 유례가 적은 것도 있다. 굴은 준나르 마을 주변 산 중턱에 7군을 이루어 줄지어 있다.

준나르 마을의 북쪽 스라이만산 석굴군 중에 앞부분에 8각 기둥 2개와 2개의 벽기둥이 있는 챠이티야가 있다. 그 기둥은 나식에 많은 형식이 같아 시대를 알 수 있다. 차이티야의 공창은 형식적인 장식물로 되어 버렸다. 내부의 8각 기둥 중 10개는 동물상을 이고 있다. 안쪽에 있는 탑파의 복엽(땅을 덮은 연잎) 기단부가 굴 안에서 시작하고 있다. 가까운 가네슈(인도의 코끼리 신) 굴은 비하라로 역시 6개의 8각 기둥이 앞 복도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안쪽에 가네슈상을 새겼는데 원래는 나식의 고다미굴과 같은 식으로 탑을 부조한 것으로 보인다. 제15굴은 열주가 있는 앞 복도 안쪽 깊숙이 있는 네모난 모양의 방에 탑이 있다. 즉 이것은 보기 드문 사각형 차이티야이며 비하라는 아니다. 분명히 옛 말발굽형(馬蹄形) 차이티야에서 발전된 것으로 준나르의 다른 굴과 굽타, 카라두에 몇 예가 있다.

준나르 석굴 전체 전경. 사진=문명대

석굴 내부 기둥 장식. 사진=문명대


마을의 서북쪽 산에 원형의 차이티야가 있다. 중앙의 탑파를 둘러 팔각기둥 12개가 천장을 받친다. 이 굴은 준나르 부근에서는 오래된 굴의 하나이고 기원전 1세기경으로 추정한다. 마을의 서남서 시바네리산에 제48굴의 방형 차이티야가 있다. 이 굴은 입구에서 중앙쪽으로 2개의 8각 기둥이 있고 그 쪽이 내실로 되어 있어서 보통 굴과 반대이다. 기둥의 수병형은 나식과 같다. 또한 정관(頂冠)의 정상에 길이 75cm의 각기둥이 서 있는데 주두와 들보를 연결한다. 이 방주는 준나르 부근에서만 알려지고 다른 것엔 남아 있지 않다. 안쪽은 네모난데 안쪽 벽 가까이에 원형탑파가 있다. 그 형태가 고타미푸트라굴 안쪽에 있는 탑파와 비슷하므로 100~130년경으로 판단된다. 천정에 방형의 바둑판형(格間)을 그리고 하나하나에 연화문을 그린 것이 남아 있는데 그림은 좀 더 후의 것으로 보인다.

준나르의 남남서에 있는 만모디산에 아무바르야라고 하는 미완성 차이티야가 있다. 대공 아래 반원형 부분에 7매의 연판이 부조되어있고, 슈리여신을 쌍쌍이 물로 씻는 부조가 남아있다. 위에는 용신이 수호하고 있다. 이 굴은 준나르 부근에서는 오래된 부류에 속하지만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이는 기원전 1세기 말경으로 판기둥의 주두에 동물은 업소 시바네리산의 제48굴에 보이듯이 방형 주신으로 되어 있다. 대공은 다른 지역의 것과 비교하면 즉, 베두사와 나식의 기원전의 기둥과 다르고 아잔타 제9굴에 가깝다. 연대는 2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만모디산의 제3굴은 비마미푸트라 주두와 비슷하고 이 역시 2세기 초 작품으로 보인다.

나식 석굴의 주요한 비하라굴과 준나르 부근의 주요한 굴은 대략 같은 시대이고 더구나 같은 정치적 세력권 안에서 제작되었던 것이 준나르에서도 발견된 나하파나와 관계있는 명문에 의해서도 증면된다. 또한 그것들은 안드라미술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일찍이 나식과 준나르의 여러 굴들은 서로 형제관계에 있고 뒤에 이어질 화려한 굽타시대 석굴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다. 또한 고대와 굽타기 사이를 잇는 대표적인 석굴군이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37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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