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사(BEDSA) 석굴
비하라 입구 위에 새겨진 말굽형 장식 독특
기원전 175년 무렵 처음 초성된 베드사 석굴은 규모는 작지만 초기 모습이 돋보이는 불교 유적이다. 사진은 베드사 석굴의 전체적인 모습. 사진=위키디피아
기원전 175년 무렵 처음 조성
규모 작지만 초기 모습 돋보여
굴 내부 공간 우기에 강하고
시원하고 조용 수도 생활 적합
베드사(Bedsa) 석굴은 베드사 마을에 가까운 수파티(Supati) 언덕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석굴 사원 중 바자(Bhaja)와 베드사(Bedsa) 지방의 석굴은 모두 기원전 175년 무렵에 처음 조성된 것이며 가장 오래된 석굴로 남아 있다. 규모는 비교적 작으며 예배굴인 차이티아와 승방인 비하라(Vihara)로 이루어져 있다.
인도 마하슈투라 주의 뿌네(Pune)지역 마발(Maval) 타루카(taluka)에 위치한 불교석굴이다. 석굴의 역사는 기원전 1세기 사타바하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드사 서굴은 바자 석굴 에서 약 9km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의 다른 석굴로는 카롤라(Karla)석굴, 파탄(Patan) 불교 동굴 및 나식(Nasik) 석굴이 있다.
두 개의 주요 석굴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동굴은 비교적 큰 사리탑이 있는 차이티야 이고, 다른 석굴은 비하라다. 그들은 장식적인 가박샤(gavaksha, 아치형)와 차이티야(chaitya) 아치 모양이 잘 만들어졌다 .
차이티야 석굴은 원형 평면 중앙에 소형 스투파를 설치하였으며 그 직경은 5.45m, 반구형 내부 공간의 높이는 4.7m이다. 천장에는 뼈대 형태를 각출(刻出)하여 목조 천장형상을 나타내고 있다. 전실 공간과 출입구는 좌우는 넓혀서 만들었다. 이 석굴 평면은 아쇼카왕 때의 수다마 석굴 형태에서 발전된 것이며 B.C. 2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굴은 외부에는 벽돌조의 건물유지들이 남아 있어 그 당시의 승방(僧房)유적으로 추정된다.
석굴건축이 발전하여 평면의 규모가 커진 것은 B.C. 1세기경부터이다. 석굴의 대부분은 불교의 석굴이며 자이나교의 석굴은 남아 있는 수가 적다. 인도에 현재 남아 있는 석굴은 50개 이상이며 이 석굴들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주의 서부에 많이 있으며 봄베이 시를 중심으로 500km 반경 이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당시 불교는 풍성한 경제력을 가진 신앙집단을 배경으로 종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제11호굴 내부 모습. 사진=위키디피아
가장 초기 형태를 나타내는 차이티아 석굴은 봄베이(Bombay) 근처인 콘딥트(Kondivte)에 있는 군투팔레(Guntupalle) 석굴이다.
군투팔레(Guntupalle, Guntupalli)의 불교석굴은 인도 안드라 프라라데시(Andhra Pradesh)주의 엘루루 지구 카마바라푸코타(Kamavarapukota) 근처에 있다. 엘루루에서 약 40km 떨어져 있다. 이 석굴은 암석 절단 부분에는 두 개의 불교 동굴, 차이티야(chaitya)홀 및 대규모 스투파 그룹이 있다. 차이티야 홀에는 목조 건축을 복제한 희귀한 조각된 돌 입구가 있으며, 로마스 리쉬(Lomas Rishi) 동굴의 단순한 버전이다.
차이티야 석굴인 제7호 굴은 바위로 이어지는 길고 좁은 통로에 있다. 전면에는 한 쌍의 동물과 기수가 있는 4개의 매우 정교한 기둥이 있다. 그 옆에 있는 측벽은 낮은 부조의 가박샤(gavaksha, 원형 또는 말굽 아치를 중심으로 모티프를 설명하는 데 가장 자주 사용되는 용어)와 건축 난간을 나타내는 격자로 덮여있으며, 이는 칼라 동굴에 약간 더 늦은 차이티야의 같은 장소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대조적으로 칼라(Karla)와 달리 차이티야 석굴 자체는 평범한 팔각형 기둥으로 장식이 거의 없다. 다른 차이티야에서 목조 건축물을 복제한 석재인 지붕의 장식용 늑골은 여기에서 실제 나무였었는데, 없어졌다.
차이티야 석굴의 핵심은 의식인 파리카르마(parikrama; circumambulation, 탑돌이)를 할 수 있는 주변 통로가 있는 석탑이다. 대부분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나중에 일부 조각품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또 조각된 문 중 하나에 새겨진 비문은 ‘나식(Nashik)의 아난다 세티(Ananda Sethi)의 아들 푸샤안카(Pushyanka)의 선물이라고 조각돼 있다.
차이티야 입구 장식. 사진=위키디피아
제7호굴에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장식. 사진=위키디피아
지상 위의 석탑 주변에 벽돌로 되어 있으며 그 앞의 공간에는 30개가 넘는 작은 탑이 있으며 다른 두 건물의 폐허가 있다. 제11호 석굴의 비하라(vihara)는 다소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주실은 약간 차이 티야(chaitya)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맨 끝이 둥글고 아치형 지붕이 있는 직사각형 평면도를 가지고 있다.
비하라 석굴은 중정 공간을 중심으로 승려들이 수행을 할 때에 거처로 사용하는 작은 방들을 돌아가며 배치한 것이며 승방과 선당(禪堂)을 겸한 것이다. 비하라 석굴은 차이티아 석굴에 근접한 곳에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남아 있는 비하라 석굴은 수가 많으나 차이티아 석굴은 그 수가 적다.
당시에 파기 힘든 석굴건축을 만든 이유는 석굴건축이 영구적인 것이며, 굴 내부공간이 시원하고 조용해 수도 생활에 적합한 까닭이었다. 또한 오랜 우기에도 비가 새지 않으며 인도의 그 지방에는 석굴을 만들기 좋은 암산이 많았던 이유라고 생각된다.
베드사 차이티아 석굴 옆에 있는 비하라 석굴은 전방 후원형으로 된 중정을 만들고 그 주위에 9개의 승방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외부로 개방되어 있지만 원래는 나무로 된 칸막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방 주변에는 방으로 통하는 9개의 문이 있으며, 각 문은 부조 차이티아 아치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모양은 사진과 같이 말굽형인데, 다른 석굴의 비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흥미롭다.
발굴 과정에서 세 개의 유물 상자가 발견되었는데, 상자에는 금, 은, 크리스탈 비즈와 같은 귀중한 요소가 많이 있다. 파드마니(Padmapani)의 청동 이미지는 관 중 하나와 함께 발견됐다. 관의 비문은 기원후 9세기에서 10세기까지의 연도를 나타내는 데바나가리 문자로 되어 있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37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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