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연꽃좌대에 서서 우리소원 들어 주시네"
시흥시 조망 소래산 8부 능선에
선각으로 조성된 거구의 부처님
유려한 곡선미 보여주는
고려초기 대표적인 마애보살상
시흥시가 눈앞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소래산 동쪽 중턱의 거대한 암벽에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의 소래터널을 자동차가 힘차게 드나드는 소래산. 초여름 녹음이 짙게 든 산색이 성하(盛夏)의 더위를 식혀주는 듯하다. 서해와 인접한 소래산은 해발고도가 300m(299.6m)도 되지 않는다. 부분 부분 암석이 드러나 보이는 이곳 8부 능선에 마애불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인천광역시와 시흥시에 걸쳐 있는 소래산에 상주하는 마애부처님을 찾아 가는 길은 여러 곳이지만 비교적 쉬운 길을 선택해 소래산 산림욕장으로 향했다. 산림욕장과 소래산은 맞붙어 있고 직선거리로 마애불과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코로나19가 약화되는 시기여서 산행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어린이집 원생들이 병아리운동복 차림으로 단체 나들이를 나와 숲 체험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다. 등산로로 이어진 소래산 정상으로 향하는 약수터 우측으로 마애불이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30여분 산을 오르니 장군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에 선으로 그려진듯한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이 모습을 나툰다.
시흥시가 눈앞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소래산 동쪽 중턱의 거대한 암벽에 거구의 유려한 보살입상이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시흥시가 마련해 놓은 안내문에는 마애보살입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머리에는 덩굴무늬가 새겨졌으며, 보석으로 꾸며진 원통형의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데, 관의 양옆으로 좁은 관 띠가 휘날리고 있어 특이하다. 얼굴은 갸름하고 눈, 코, 입이 큼직하며, 양쪽 귀는 유난히 길게 늘어졌다. 또한 목에는 삼도라고 불리는 선이 새겨져 있어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싼 옷인 법의는 배에서부터 규칙적인 반원을 그리며 무릎까지 물결치듯이 유려하게 흘러내렸다. 또한 가슴에는 속옷을 묶은 띠 매듭이 선명하다.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쓴 모습이나 이목구비가 큼직하게 표현된 것은 고려 전기 석불 조각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손 갖춤에서 오른손은 가슴으로 올려 바깥쪽으로 향하고, 왼손은 배꼽 부분에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고 있다.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발꿈치를 붙이고 양쪽으로 발끝을 벌린 자세를 하고 있는데, 발가락의 표현이 매우 섬세하다. 이 입상은 전체 높이 약 12.2m(머리 높이 3.4m, 보석 관 높이 1.4m), 어깨너비 약 3.7m, 연꽃 모양 대좌 너비 약 4.7m에 달하는 불상으로 우리나라 석조 불상 조각 중에는 매우 큰 편이다. 새긴 선의 깊이가 5mm 정도로 얇음에도 기법이 뛰어나며 마치 그림을 그린 듯이 표현되어 있다."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입면도.
이 마애보살입상은 1990년 향토유적으로 지정돼 오다가 2001년 9월 국가 보물로 지정돼 잘 보존되고 있다. 애초에는 문화재적 가치가 저평가 돼 있었는데 2000년대 초 당시 문명대 동국대 교수가 조사를 통해 보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의견을 제시해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시흥 소래산 마애불'이라는 명칭도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으로 변경됐다.
당시 불교신문은 문명대 교수의 재평가 의견을 보도하면서 국가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내용을 게재하기도 했다. 문 교수는 불교신문에 기고문을 다음과 같이 보내오기도 했다.
"머리에 쓴 보관은 높은 고관(高冠)인데 꽃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고 관대도 양쪽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고려 초의 관촉사 미륵보살입상 등 당시에 유행된 보관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고관은 이 보살상의 격조와 편년을 잘 알려주고 있으며 또한 중국 오대(五代)나 송(宋) 초기의 보살상들과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당시에는 인근부대가 훈련장으로 사용해 훼손위기에 있었는데 불교신문이 보도하고 불교미술학자인 문명대 교수의 노력으로 보존대책이 강구돼 국가보물로 승격되었다. 이처럼 '바위에 스며든 부처님'은 수많은 민초들의 발원에 의해 조성되었고, 그들에 의해 보존되고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보존을 위해 문화재적 가치를 문 교수는 그 어디에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 내용을 자세하고 기술했다.
"얼굴도 둥글고 복스러우며 이목구비도 중심으로 몰린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체구는 장대하지만 오른쪽으로 약간 비틀어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 당시로서는 최고의 세련미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오른손과 왼손을 아래위로 하여 무엇을 받들어 가진 형상을 짓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흔히 이런 수인을 봉보주인(捧寶珠印)이라 말하고 있으며 현재 보주는 잘 보이지 않고 있지만 두 손은 유연한 곡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이런 손과 함께 섬세하고 화려한 연꽃대좌를 딛고 있는 두 발도 발톱까지 묘사한 섬세함과 물흐르는듯한 곡선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곡선미는 보살이 착용하고 있는 대의(大衣)의 옷주름에서 절정을 이룬다. 즉 상체나 하체에 새겨진 V형 평행의 문선은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한 필치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려하고 섬세하며 유려하기 짝이 없는 이 선각마애보살은 이른바 나말여초(羅末麗初) 불상 가운데 유려한 곡선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마애보살상으로서 필력의 대가이면서 뛰어난 화가가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절벽 가득히 선각으로 새긴 당대 최고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높이만 12.2m에 달하는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모습.
국가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여서인지 관할 행정관처가 잘 보존하고 있었다. 돌계단을 튼튼하게 쌓고 방부목으로 나무계단을 설치해 방문객들이 접근하기 용이하게 했다. 마애보살입상을 예경하는 일부 기도객은 좌복을 깔고 기도를 올린 흔적을 남겼다. 돌석축 사이에 관리자들이 도라지와 국화, 비비추를 심어 경관을 미화했다.
시민들이 언제나 드나드는 산책로의 중심에 있어서 시흥의 성보(聖寶)가 된지 이미 오래된 고려시대의 마애보살입상은 '지역민의 부처님'으로 귀의대상이 되고 있다. 불자로서 아쉬운 게 있다면 부처님으로서 공양을 받지 못하는 문화재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흥=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3723호]
'세상사는 이야기 > 바위에 스며든 부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화 보문사 석조여래좌상 (0) | 2022.08.07 |
---|---|
음성 미타사 마애여래입상 (0) | 2022.07.22 |
예산 쌍지암 마애불입상 (0) | 2022.06.21 |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0) | 2022.06.18 |
남원 노적봉 호성암터 마애여래좌상 (0) | 2022.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