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溟州) 오대산(五䑓山) 보질도(寶叱徒) 태자전기(太子傳記)

옛날의 하서부(河西府)


신라(新羅) 정신태자(淨神太子) 보질도(寶叱徒)는 아우 효명태자(孝明太子)와 더불어 하서부(河西府) 세헌(世獻) 각간(角干)의 집에 도착하여 하루 밤을 자고 다음날 큰 고개를 넘어 각기 1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도착하여 여러 날을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647) 8월 5일 형제가 함께 오대산(五山)으로 숨어 들어갔다.
무리들 가운데 시위자(侍衛)들이 옮겨가며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모두 함께 서울로 돌아갔다.

형 태자(太子)는 중대(中臺) 남쪽 아래 진여원(眞如院) 터 아랫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곳을 보고 그곳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동생 효명(孝明)은 북대(北臺)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역시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형제 두 사람이 예배하고 염불을 수행하고 오대(五)에 나아가 공경하여 예배하였다.

청색방인 동대(東臺)의 만월 모양(滿月形)의 산에는 관음보살(觀音) 진신(真身) 1만이 항상 있었고, 적색방인 남대(南臺)의 기린산(麒麟山)에는 8대 보살(八代菩薩)을 수위로 한 1만 지장보살(地藏菩薩)이 항상 있고, 백색방인 서대(西臺) 장령산(長嶺山)에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수위로 하여 1만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항상 거주하고, 흑색방인 북대(北臺)의 상왕산(相王山)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수위로 한 5백 대아라한(五百大阿羅漢)이 항상 있고, 황색방인 중대(中䑓) 풍로산(風爐山)은 또한 이름을 지로산(地爐山)이라고 하여 비로자나(毘盧遮那)를 수위로 한 1만 문수보살(文殊)이 항상 있고, 진여원(真如院) 땅에는 문수보살(文殊大聖)이 날마다 이른 새벽에 36가지 모양으로 변화하여 나타났다. 36가지 모양은 대산오만진신전(臺山五萬眞身傳)에 보인다.

두 태자(太子)는 나란히 예배하고, 매일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와 차를 다려 1만 진신문수보살(真身文殊)을 공양하였다. 정신태자(淨神太子)의 아우 부군(副君)이 신라(新羅)에 있으며 왕위를 다투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장군(将軍) 네 사람을 보내 오대산(五䑓山)에 이르러 효명태자(孝明太子) 앞에서 만세(萬歳)를 부르니, 이에 오색 구름(五色雲)이 있어 오대(五䑓)에서부터 신라(新羅)에까지 7일 7야 동안 빛이 비치었다. 나라사람들이 그 빛을 찾아 오대산(五䑓山)에 이르러 두 태자(太子)를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보질도태자(寳叱徒太子)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지 않으므로, 효명태자(孝明太子)만 모시고 서울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재위 20여 년인 신룡(神龍) 원년(705) 3월 8일 비로소 진여원(真如院)을 세웠다.고한다. 보질도태자(寳叱徒太子)는 항상 골짜기의 신령한 물(霊水)을 마시고, 육신(肉身)이 하늘을 날아 유사강(流沙江)에 이르러 울진대국(蔚大國)의 장천굴(掌天窟)에 들어가 수도하고 다시 오대산(五山) 신성굴(神聖窟)로 돌아와 50년 동안 수도하였다.고 한다. 오대산(五山)은 곧 백두산(白頭山)의 큰 줄기로 각 대(各臺)에는 불보살의 진신(真身)이 항상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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