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산이성(包山二聖)
신라 때 관기(觀機)·도성(道成) 두 명의 뛰어난 스님(聖師)이 있었는데,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으나, 함께 포산(包山)에 은거하였다. 향(鄕)에서 소슬산(所瑟山)이라 이르는 것은 범어의 음(梵音)으로 이것은 포(包)를 이야기한다. 관기(觀機)의 암자(庵)는 남쪽 고개였고, 도성(道成)은 북쪽 굴(穴)에 거처하였다. 서로 10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구름을 헤치고 달을 읊으며, 매일 서로 친하게 지냈다. 도성(道成)이 관기(觀機)를 부르려고 하면, 곧 산 속에 나무가 모두 남쪽을 향해 구부려, 서로 맞이하는 사람 같았다. 관기(觀機)는 그것을 보고 갔다. 관기(觀機)가 도성(道成)을 만나려 하면, 곧 또한 그것과 같아서 모두 북쪽으로 쏠리니, 도성(道成)은 이에 이르니, 이와 같음이 몇 해였다. 도성(道成)은 사는 곳 뒤의 높은 바위 위(髙嵓)에서 항상 참선하였다. 하루는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 몸이 뛰어나오니, 온 몸이 하늘에 올라 날았는데, 다다른 곳을 알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말하길, 수창군(壽昌郡), 지금의 수성군(壽城郡)에 이르러 몸을 버렸고, 관기(觀機)도 또한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지금 두 스님(聖師)으로 그 터를 이름 지었는데, 그 자리가 모두 남아 있다. 도성암(道成嵓)의 높이가 수 장(丈)이며, 후세 사람이 굴(穴) 아래 절을 지었다. 태평흥국(太平興國) 7년 임오(壬午)에 스님(釋) 성범(成梵)이 처음 이 절에 와서 살다가, 만일미타도량(萬日彌陀道場)을 열고, 50여 년을 정성을 다하니, 자주 상서로운 조짐이 있었다. 이 때 현풍(玄風)의 신의있는 남자 2십여 명이 해마다 결사(結社)하고, 향나무를 주워 절에 바쳤다. 매번 산에 들어가 향(香)을 채취하여 쪼개고 씻어 발(箔) 위에 펼쳐 놓으니, 그 나무가 밤에 이르면 빛을 내어 촛불과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고을 사람들이 향도(香徒)에게 크게 시주하고, ‘빛을 얻은 해’라고 경축하니, 이것은 두 성인(二聖)의 영적인 감응(霊感)이며, 혹은 산신(岳神)에게 도움 받은 바라고 하였다. 신의 이름(神名)은 정성천왕(靜聖天王)으로 일찍이 가섭불(迦葉佛)의 시대에 부처님(佛)의 당부를 받고, 중생을 구제하려는 염원이 있어, “산 속에서 1천 인(一千人)이 세상에 나오기(出世)를 기다려 남은 보(報)를 받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지금 산 속에서 일찍이 아홉 성인(九聖)을 기록하였는데, 남겨진 이야기는 상세하지 않으나, 말하길, “관기(觀機), 도성(道成), 반사(㮽師), 첩사(?師), 도의(道義) 백암사(栢岩) 터가 있다. 자양(子陽), 성범(成梵), 금물녀(今勿女), 백우(白牛) 스님(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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