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공신회맹축 - 보사공신녹훈후 국보335호

소 재 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50)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는 1680년(숙종 6) 8월 30일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會盟祭, 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復勳都監, 나라에 공적을 세운 인물들에게 공신의 칭호와 관련 문서 등을 내리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관청)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다. 이 의식에는 왕실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이름인 ‘공신(功臣)’ 중 개국공신(開國功臣)부터 보사공신(保社功臣)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회맹제(會盟祭)가 거행된 시기와 이 회맹축(會盟軸)을 조성한 시기가 15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숙종 재위(1674∼1720년) 중 일어난 여러 정치적 변동 때문이었다. 당시 남인(南人)과 더불어 정치 중심세력 중 하나였던 서인(西人)은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을 계기로 집권해 공신이 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공신으로서 지위가 박탈되었다. 이후 서인은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다시 집권하면서 공신 지위를 회복하였고 이때 1등~3등까지 총 6명(김만기, 김석주, 이입신, 남두북, 정원로, 박빈)에게 ‘보사공신(保社功臣)’ 칭호가 내려졌다. 「이십공신회맹축(二十功臣會盟軸)」은 숙종 연간 보사공신(保社功臣)이 있기까지 공신으로 지위 부여(녹훈, 錄勳)와 박탈(삭훈, 削勳), 회복(복훈, 復勳)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물자료이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는 1680년 회맹제(會盟祭) 거행 당시의 회맹문(會盟文, 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보사공신(保社功臣)을 비롯한 역대 공신들, 그 후손들을 포함해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會盟錄), 종묘에 올리는 축문(祝文, 제사 때 신에게 축원하는 글)과 제문(祭文)으로 구성되었으며, 축의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추었다. 1680년 회맹연에는 참석대상 총 489명 중 412명이 참석했으며,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연로하거나 상(喪)을 당한 사람, 귀향 등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공신회맹제(功臣會盟祭)가 있을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會盟軸)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10년까지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다. 1646년(인조 24)년과 1694년(숙종 20) 제작된 회맹축(會盟軸), 1728년(영조 4) 분무공신(奮武功臣) 녹훈 때의 회맹축(會盟軸)이 그것이다. 이 중 영조 때 만들어진 이십공신회맹축(二十功臣會盟軸)의 실물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1646년에 제작된 「이십공신회맹축-영국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寧國功臣錄勳後)」(보물 제1512호)는 국새가 날인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어람용이자 형식상‧내용상 완전한 형태로 전래된 회맹축(會盟軸)은 이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가 유일하다. 이 회맹축(會盟軸)은 17세기 후반 숙종 대 경신환국(庚申換局), 기사환국(己巳換局), 갑술환국(甲戌換局)을 거치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서도 역사‧학술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왕실유물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제작되어 조선 후기 왕실 공예품의 백미(白眉)로서 예술성 또한 우수하므로 가치가 충분하다. 아울러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롭고, 장대하게 제작되어 공예, 직물사적으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세로 88.8cm, 가로 2,414cm의 긴 두루마리에 당시 글씨를 잘 썼다고 알려진 서사관 이익신(李翊臣)이 글씨를 쓰고, 국왕을 위해 옥이나 상아, 생초(生綃)나 비단과 같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숙련된 기량을 지닌 관청 소속 경공장들이 솜씨를 발휘하여 형식적인 완성도가 높아 조형 예술적으로도 주목된다. 이 어람회맹축은 이것을 만드는 전말을 기록한 『녹훈도감의궤(錄勳都監儀軌)』를 통해 평남 성천에서 옥축(玉軸)을 진상하거나, 베틀로 생초(生綃)를 직조하고 다회틀로 다회(多繪)를 짜고 상아로 비녀(簪)를 만들었으며, 비단 위에 배접을 3번 바르고 매끈하게 광낸 후, 화원 한후방(韓後邦)이 인찰을 긋는 등 어람용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고급 재료와 도구 및 장인의 기록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왕실공예품의 기술적 수준도 알 수 있게 한다.

이십공신(二十功臣)은 개국공신(開國功臣, 1392), 정사공신(定社功臣, 1398), 좌명공신(佐命功臣, 1401), 정난공신(靖難功臣, 1453), 좌익공신(佐翼功臣, 1455), 적개공신(敵愾功臣, 1467), 익재공신(翊戴功臣, 1468), 좌리공신(佐理功臣, 1471), 정국공신(靖國功臣, 1506), 광국공신(光國功臣, 1590), 평난공신(平難功臣, 1590), 호성공신(扈聖功臣, 1604), 선무공신(宣武功臣, 1604), 청난공신(淸難功臣, 1604), 정사공신(靖社功臣, 1623), 진무공신(振武功臣, 1624), 소무공신(昭武功臣, 1627), 영사공신(寧社功臣, 1628), 영국공신(寧國功臣, 1644), 보사공신(保社功臣, 1680)이다.

경신환국(庚申換局)은 1680년 남인이 서인에 의해 정치적으로 실각해 정권에서 물러난 사건.
기사환국(己巳換局)은 1689년 숙종의 계비였던 희빈장씨의 원자(元子) 책봉 문제로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사건.
갑술환국(甲戌換局)은 1694년 서인들이 전개한 폐비 민씨(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반대한 남인이 화를 입어 권력에서 물러나고 서인이 재집권한 사건.

이십공신(二十功臣) 내역

① 개국공신(開國功臣)

1392년(태조 1), 이성계를 조선의 국왕으로 추대하는데 공을 세운 공신. 1392년 8월 20일에 공신들의 위차를 정하고, 9월 21일에 공신들을 편전으로 불러 연회를 베풀고 교서와 녹권(錄券)을 내림. 일등공신 배극렴 등 44명

② 정사공신(定社功臣)

1398년(태조 7, 정종 즉위), 제1차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이방석(李芳碩) 세력을 몰아내는데 기여한 공신. 1398년 9월에 공신의 위차를 정하고, 11월에 연회를 베풀고 교서와 녹권을 내림. 일등공신 이화 등 29명

③ 좌명공신(佐命功臣)

1401년(태종 1), 제2차 왕자의 난에서 승리를 거두어 이방원(李芳遠)을 3대 국왕으로 등극시키는 데 기여한 공신. 1401년 1월에 공신의 등급을 4등급으로 정하고, 3월에 연회를 베풀면서 교서와 녹권을 내림. 일등공신 이저 등 47명

④ 정난공신(靖難功臣)

1453년(단종 1), 단종이 재위할 때 수양대군(세조) 세력이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등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에 공을 세운 공신. 1453년 10월에 수양대군에게 공신호와 식읍(食邑, 토지와 가옥)을 내렸고, 11월에는 정난공신에게 가자(加資, 품계를 더해 줌)하였으며, 1455년 1월에 경복궁 사정전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교서와 회맹축을 내림. 일등공신 수양대군 등 43명

⑤ 좌익공신(佐翼功臣)

1455년(세조 1),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보위세력을 몰아내고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왕위에 오르도록 기여한 공신. 1455년 9월에 공신의 위차를 정하고 상급을 내림. 일등공신 이중 등 44명

⑥ 적개공신(敵愾功臣)

1467년(세조 13), 함길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은 세운 공신. 1467년 8월과 9월에 공신을 정하고, 11월에 경복궁 인정전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이준 등 44명

⑦ 익재공신(翊戴功臣)

1468년(예종 즉위), 유자광 등 훈구세력이 남이를 비롯한 신진세력을 역모에 연루시켜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녹훈된 공신. 1468년 10월에 공신의 위차를 정하고, 1469년(예종 1) 5월에 경회루에서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신숙주 등 37명

⑧ 좌리공신(佐理功臣)

1471년(성종 2), 성종이 즉위하고 예종의 삼년상을 마친 시점에서 성종을 보필한 공이 있는 신하에게 녹훈한 공신. 1471년 3월에 공신의 위차를 정하고, 1472년(성종 3) 7월에 인정전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녹권을 내림. 일등공신 신숙주 등 73명

⑨ 정국공신(靖國功臣)

1506년(중종 1),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이 즉위하는데 기여한 공신. 1506년 9월에 공신의 위차를 정하고 1507년(종종 2) 2월에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박원종 등 116명

⑩ 광국공신(光國功臣)

1590년(선조 23), 명나라의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이성계의 계보가 잘못 기재된 것을 바로잡는데 기여한 공신. 1588년(선조 21)에 수정된 대명회전(大明會典)이 도착했고, 1590년 8월에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윤근수 등 19명

⑪ 평난공신(平難功臣)

1590년(선조 23), 정여립의 역모를 사전에 고변하고 처리하는데 공을 세운 공신. 1589년(선조 22) 10월에 황해감사의 비밀보고서를 통해 정여립의 역모 의혹이 제기되었고, 정여립을 비롯한 동인계(東人系) 인사들의 옥사가 일어남. 1590년 8월에 광국공신과 함께 평난공신에게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박충간 등 24명

⑫ 호성공신(扈聖功臣)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을 세운 공신. 전란이 평정되고 나서 1604년 6월에 공신들에게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이항복 등 86명

⑬ 선무공신(宣武功臣)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때 전장에서 무공을 세운 장수와 명나라에 주청사(奏請使)로 갔던 사신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녹훈한 공신. 전란이 평정되고 나서 1604년 6월에 호성공신과 함께 녹훈됨. 일등공신 이순신 등 18명

⑭ 청난공신(淸難功臣)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때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 데 기여한 공신. 1596년(선조 29)에 종실 자손인 이몽학이 충청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홍주목사 홍가신 등이 난을 진압함. 전란이 평정되고 나서 1604년 6월에 호성공신, 선무공신과 함께 녹훈됨. 일등공신 홍가신 등 5명

⑮ 정사공신(靖社功臣)

1623년(인조 1),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를 즉위시키는데 공을 세운 공신. 1623년 윤10월에 공신의 위차를 정하고, 1625년(인조 3) 4월에 융정전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김류 등 53명

⑯ 진무공신(振武功臣)

1624년(인조 2), 정사공신에서 2등에 녹훈된 것에 불만을 가진 이괄이 1624년 1월에 평안도에서 군사를 이끌고 도성까지 점령했던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신. 3월에 공신의 위차를 정하고, 1625년(인조 3) 4월에 연회를 베풀면서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장만 등 27명

⑰ 소무공신(昭武功臣)

1627년(인조 5), 강원도 횡성에서 오랑캐를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킨 이인거의 난을 진압한 공신. 1627년 11월에 원주목사 홍보 등을 공신으로 녹훈함. 일등공신 홍보 등 5명

⑱ 영사공신(寧社功臣)

1628년(인조 6), 인조반정 후 유배되었던 유효립이 광해군을 상왕으로 하고 인성군을국왕으로 옹립하려는 역모 사건을 고변하고 처리하는 공을 세운 공신. 1628년 3월에 공신으로 정함. 일등공신 허적 등 11명

⑲ 영국공신(寧國功臣)

1644년(인조 22), 심기원 등이 인조를 폐하고 회은군을 국왕으로 옹립하려는 역모 사건을 고변하고 옥사를 다스리는데 기여한 공신. 1644년 6월에 공신으로 확정하고, 9월에 창경궁 명정전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교서를 내림. 일등공신 구인후 등 8명

⑳ 보사공신(保社功臣)

1680년(숙종 6) 녹훈, 1689년(숙종 15) 삭훈, 1694년(숙종 20) 복훈. 숙종 재위 초인 경신년(1680)에 허적의 아들 허견이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과 함께 도모한 역모 사건을 사전에 고변하고 처리하는 데 공을 세운 공신. 이 사건으로 남인 세력이 축출되고 서인 세력이 다시 집권하게 됨. 1680년에 녹훈(錄勳)되었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하여 삭훈(削勳)되었으며,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복훈(復勳)됨. 일등공신 김석주 등 6명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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